오스만제국은 1299년 오스만 1세가 셀주크제국을 무너뜨린 후 소아시아와 중동·아프리카에 이어 유럽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로부터 600여년이 지난 뒤 오스만제국은 붕괴의 길로 들어선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에 서면서 패전의 멍에를 쓴 때문이다. 1차 대전 전후 처리 과정에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 과거 자신들의 선조들이 살았던 팔레스타인에 나라를 세우려는 시오니즘 운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이 같은 유대인들의 건국 열망을 실현시킨 것은 영국이었다. 영국은 1차대전 끝 무렵인 1917년 이곳에 유대인을 위한 국가 수립에 찬성했다. 이것이 이른바 ‘밸푸어 선언’이다.
2차 대전후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로 시오니즘에 대한 동정심이 확산됐고 1947년 유엔은 이곳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으로 분할하는 안을 채택한다. 이어 1년 뒤인 1948년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우자 아랍 국가들이 침공을 하면서 1차 중동전쟁이 벌어진다.
이때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는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점령한다. 서안지구는 제주도의 3배로 가자지구에 비해 무려 15배나 크다.
레바논 헤르몬산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갈릴리호수를 거쳐 사해로 흘러드는 요르단강의 서쪽에 있어 웨스트뱅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하지만 1967년 벌어진 6일간의 제3차 중동전쟁에서 모두 이스라엘이 점령했고 이후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은 지속됐다.
1993년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서로 인정하기로 하는 평화협정을 맺은 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설립돼 서안지구 중 A·B구역과 가자지구를 통치한다. 가자지구는 2007년부터 팔레스타인의 다른 정파인 하마스의 통치아래 들어갔고 이스라엘군은 가자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서안지구의 60%에 달하는 C구역은 여전히 이스라엘군이 점령하고 있고 이스라엘은 이곳에서 이스라엘 정착촌을 끊임없이 늘려나가며 계속 대립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극우파인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9일의 총선을 앞두고 막판에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을 합병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으로 미국 대사관을 이전하고 골란고원을 이스라엘 영토로 인정한데 따른 자신감을 반영한다.
팔레스타인이 거세게 반발했지만 전망이 밝지 않다. 냉엄한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힘이 없으면 언제든 당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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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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