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몇 번 나눈 사이에 단둘이 차를 타고 가는 건 꽤 어색한 일이다. 모임에서 두세 번 만나기는 했지만, 정확한 이름도 알지 못하고, 그저 만나면 눈인사 정도 하고 지내는 그런 사람.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어디 사는지, 그녀도 나를 아는지 알지 못하는 그런 관계. 그날 모임에선 더 친해져 보자는 의미로 함께 밥 먹을 기회를 만들고, 카풀도 했는데, 하필이면 내 차엔 나와 그녀 단둘이만 가게 됐다.
타는 사람도 태우는 나도 영 어색하니, 마치 처음 만난 사람들처럼 깍듯하게 인사를 나눴다. 또박또박 이름도 다시 나눠 가졌다. 영혼 없는 몇 마디 대화를 더 나눴지만, 차 안 공기는 무겁고 답답했다. 때문에 가본 길인데도 하이웨이로 나갈 길을 놓치고 말았다. 10여 분은 더 소요될 길을 가게 됐는데, 난 길을 놓친 사실 대신, 이 길은 로컬 길을 타는 게 제대로 된 구경을 할 수 있어, 늘 이 길로 간다며 허세를 떨었다. 맥없이 떨어지는 늦가을 낙엽처럼 그 변명이 참 어색했다. 음악을 틀었다. 노래가 더 이상의 오류를 막아 주기를 바라며 말이다.
“어머, 저도 이 노래 좋아해요. 이문세 좋아하세요?” 어색했는지 내내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했던 그녀가 이문세 노래에 모처럼 나와 시선을 맞춘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1988년 발매된 이문세 5집 수록곡. 이 노래로 시작된 이야기는, 그의 힛트곡들로, 그 음악을 들었던 우리의 1988년 즈음의 서로에 대해서도 얘기할 수 있었다. 어색한 숨소리만 들리던 차 안은 곧 끊이지 않은 수다로 노래 소리마저 묻었다.
언제부터인지 난, 만남에 게으름이 생겼다. 꽤 긴 세월을 만난 사이도 별일 아닌 일로 상처받고, 그 상처가 곪아, 그 관계 이외의 다른 생활까지 영향을 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한동안 만남도 줄였고, 새로운 인간관계는 더더구나 시작하지 않았다. 새사람에 대해 알기도 귀찮았고, 기억할 열정도 없었다. 어떤 만남이 무슨 이야기를 만들지 모르면서도 한사코 외면만 했다.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다. 노랫말처럼 세월 속에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인간관계라 할 지라도, 어느 날 문득 듣게 된 노래로 그 어떤 만남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요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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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혜(전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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