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좌혜(右靴左鞋)는 오른쪽엔 가죽신을, 왼쪽엔 짚신을 신었다는 뜻으로, 조선 선조 때 문인, 백호 임제의 고사(古事)이다. 하루는 임제가 말을 타려고 하자, 하인이 나서서 신발이 짝짝인 걸 알려주었다. 그러자, “길 오른편에서 본 사람은 가죽신을 신었다 할 것이고, 왼편에서 본 자는 짚신을 신었군 할 것인데, 무슨 걱정이냐!” 하며 어서 가자고 했다. 사대부의 신분상 다소 파격적인 짝짝이 신발의 일화는 사실, 주변에서도 간혹 들을 수 있다. 바로 그날의 나처럼 말이다.
오래 전부터 준비한 일정이었다. 쉴 틈 없던 생활로 재충전이 필요한 터에 마침 성지순례의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그러나 당일, 공항에서 프리 첵을 하고 돌아서며 우연히 고개를 숙인 나는 어쩔 줄 몰랐다. 샌들이 짝짝이였다. 늘 신던 까만 샌들 두 켤레가 현관에 있었는데 한 짝씩 신고 나온 것이다. 세면도구와 착용한 옷 정도로 꾸린 작은 기내용 캐리어에 여벌의 신발이란 없었다. 별 수 없이 신발을 짝짝이로 신은 채 성지로 향했다.
해발고도 2천미터를 넘어서는 고산지대에 있는 도시는 쾌적한 날씨였지만, 가을 태양은 아직 뜨거웠다. 스페인 정복자가 아즈텍의 수도를 파괴하고 건설한 멕시코시티는, 인신공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던 원주민의 토착신앙과, 부유한 인디언의 문명을 몰살하고 탈취한 정복자의 폭력과, 그 고통의 세월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며 어머니처럼 자애하신 분. 그렇게 아픈 영적,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에 온 국민에게 그토록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받고 계신걸까.
돌아온 후, 짝짝이 신발은 친구들과 주변에 웃음을 주며 한동안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실수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짝짝이 신발을 들여다보는 계기도 되었다. 우화좌혜는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을 꼬집는 말일 것이다. 테페악 언덕에서 바라본 메트로폴리탄 도시는 중남미 특유의 색채와 함께 강렬했다. 그러나 목적지로 가던 길에 눈으로 스쳐간 낡고 영세한 가옥들과, 학교가 아닌 노점상에서 일하던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왔던 건 짝짝이 신발을 신어 보고서다. 그제야 바실리카 입구에 적혀있던 어머니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가난한 자의 어머니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살피는 마음이라는 것을.
이 가을, 풍성함 뒤로 가려진 소외된 이웃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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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은 (SF한문협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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