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인으로 가슴 뭉클한 감동과 깨달음 그리고 삶에 대한 도전을 받는 순간은 한 사람의 일생 궤적과 성찰을 담은 자서전을 만들 때다. 저자 대부분이 6.25 전쟁을 겪은 분들로 미국 땅에 뿌리내리고 성공적으로 삶을 완주하는 모습들을 보면, ‘노병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명언이 괜한 말이 아님을 실감케 한다.
27명이 겪은 <6.25 참전 및 체험기>를 발간하며 참전용사들이 위로받는 것을 확인했던 나는, 2018년 말 우리의 첫사랑이요 첫 언어였던 어머니를 기리는 연세든 총 130명이 쓴 <울 엄마>와 <엄마 미안해!>라는 2권의 책을 출간했다. 어머니가 억지로 쥐어준 흰 손수건을 항복의 표시로 총구에 매달아 살아남은 실향민 한 분이, 인사조차 제대로 않고 떠나온 자신을 자책하며 늘 눈시울을 붉히시기에 그 한을 풀어드리려 시작한 일이었다. 많은 분들이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의 고된 삶을 돌이키며 자신의 불효를 고백한 사모곡(思母曲)으로, 울 장소를 마련하고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씻어준 그 책은 뜻하지 않게 전쟁의 상처를 다독이게 했다.
홀어머니와 서로의 파수꾼이 되어 고군분투했던 아들들, 그들은 아버지가 되어서는 오로지 자식의 미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사전적 의미는 아니나 Family(가족)의 어원을 ‘Father and mother I love you!(아버지 어머니 나는 당신들을 사랑합니다.’)라고 하지만, 어머니에 비해 어쩐지 아버지 마음은 없는 듯도 싶고 은혜나 희생은 가볍게 여겨왔다. 태평양 연안 천축잉어는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입에 넣어 부화시킨다고 한다. 살려면 뱉을 만도 하건만 버티다 자식들이 부화할 즈음 기력이 소진해 죽는단다. 목숨으로 아버지를 증명하는 잉어나 부화한 알을 키우고 자기 살을 파먹게 한 후 죽어가는 가시고기가 바로 내가 출판을 통해 알게 된 부성이요 고독한 아버지였다.
아버지날과 6.25가 있는 주, 저문 고개를 넘는 백발의 꾸부정한 허리에서 고단함과 시린 한을 본다. 다행히 아버지에게 최대의 효도는 아버지를 능가했다는 승어부(勝於父)라고 하듯, 그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뛰어넘으며 독한 삶을 불사조처럼 살아냈다. 대를 이어 자녀들 또한 멋진 승어부를 할 것이다. 다만 자식들이 모르는 것은 ‘아버지 마음’을 알아차렸을 때 아버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영란(북산책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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