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7월초순, 여름이 치솟으며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이제 미국에 서는 독립기념일 연휴를 지내고, 학생들은 여름방학을 즐기며 어른들도 휴가를 누리는 때이다. 뉴잉글랜드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서 2년여를 지내며 쓴 ‘숲속의 삶’에 나타난 평화 애호와 인권에 대한 사상으로,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와 인도 마하트마 간디 및 미국 인권운동가 킹박사 등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초월주의 위인 헨리 데비 드 소로가 180년전 이 무렵에 그 숲속에 자리를 잡고 자연 친화적 살림을 살기 시작 하였음이 새삼 환기된다. 그의 불교를 포함한 동양사상에의 관심에 주목하며.
한국의 이른바 전통적 ‘세시풍속’ 즉, 시절에 따라 즐기는 세상 민중의 풍물과 관습 속에는, 이 무렵 ‘유두절(流頭節)’이 자리한다. 유두절은 음력 유월보름날로서, 그 무렵 ‘흐르는 물에 머리를 씻으며 목욕을 하여’ 더위와 심신의 때를 흘려 보내고 이웃들과 어울려 여름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물가나 산골에서 잔치를 벌이는 농촌 공동체 생활문화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즈음, 논밭의 모내기 및 각종 씨뿌리기와 보리나 밀의 수확 등, 분주했던 일들을 마무리하고 다소의 휴식과 여유를 누리면서, 수고했던 일꾼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더불어 즐기는 놀이의 한마당을 펼치는 것이다. 이때 새로 수확한 보리와 밀 등의 곡식의 가루로 만든 국수나 떡 및 화전을 포함하여 참외와 복숭아 등 그 시절의 새 과일로 ‘신토불이’의 먹거리를 즐기는 건강한놀이와 살림이다. 그 뜻과 정취를 나름대로 처지와 상황에 맞추어 살려 보면 좋겠다.
요즈음 워싱턴무량사 도량인 백록원은 저녁때면 매미 소리가 제법 들리고 반딧불이 여기저기 곱게 피어난다. 한낮의 더위가 비켜나고 해질 무렵이면, 숲속에 쉬고 있던 흰꼬리사슴들이 풀밭에서 활발하게 노닐고, 나뭇가지에 무대를 차린 참매미들이 목청을 높여 노래를 한참 부른다. 어둠이 내리면 반딧불들이 너른 풀섶과 수풀 언저리에서 빛내기를 겨루듯 반짝반짝 불을 켰다껐다하며 사방으로 날아다닌다. 며칠 사이의 짧은 살림살이를 위해 몇 년 동안을 고생하며 준비한 정성을 선보이는 매미. 등불을 켤 수 없었던 옛날 가난한 선비의 글공부에 빛을 선사했다는 반딧불. 모두 생명의 신비와 천연 학습 노력의 아름다운 전설을 되새겨 보게 한다.
현대인들이 각종 재주와 기술의 장비와 시설로 짧은 시간에 빠른 성공을 추구하고 모색하는 가벼운 풍조와 조급함에 대조되는 바, 아득하고 느긋한 자연의 도리를 넌지시 저절로 짐작하게 한다. 한밤에는 하늘에 별들이 조용히 밀담을 나누는 듯 다소곳이 빛나고, 초승부터 보름까지 달들은 그 차고 기우는 모습으로 우주의 의연한 운행과 질서 및 보완과 치유과정을 보여준다. 한낮의 눈부신 빛과 열기에 지친 생명들을 차분히 쉬게하며 저절 로 소모된 전체의 부분을 보충하고 본연의 기운을 회복시켜서, 새 아침의 신선한 시작을 준비하도록 은근히 부드럽게 이끌어 나간다.
한낮의 무더위가 고조되며 밤에도 열기가 크게 내리지 않는 열대야가 자주 찾아드는 한여름, 연중 가장 더운 소서(7/7)와 대서(7/22) 절기를 맞으며, 그 사이에 유두절(7/9)이 있음을 본다. 이 시절에 옛날 선인들이 보여주었던 미풍양속 전통문화의 선례를 참고하여, 독자 여러분들도 처소에서 가까운 물가나 산골에 들러, 흐르는 물이나 못에서 머리를 감고 몸의 땀과 때를 씻어내며, 마음의 걱정거리와 망상 번뇌를 내려 놓고, 시원한 자유와 해탈의 기회 몸소 가져보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울러, 더위 속에서도 단련하고 성장하는 자기실현의 성취원력으로 참을성 있게 성숙을 기다리며, 독서와 사색의 고귀함을 보이는 근면성실의 학자와 수행자 가풍이 자연스럽게 자기살림 속에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신실한 노력의 보람이 누려지기를 축원한다. 건강하고 알찬 여름 자유자재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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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 워싱턴무량사 회주 동국대 불교학과 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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