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세인트루이스 시내를 몇 바퀴 헤맨 끝에 차가 멈췄다. 희미한 가로등 아래 작은 간판이 모습을 드러낸다. 4633 Westminster. 드디어 찾았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소년 시절을 보낸 집이다. 지금은 ‘For Sale or Lease’라는 문구가 붙은 아파트 건물. 시간의 무게를 품은 벽돌집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 윌리엄스와 그의 가족이 함께 살던 공간이었다.
현관 옆 창문 사이로 TV 불빛이 새어나오고, 설거지 소리가 들린다. 문득 이곳에서 어머니 아멘다가 딸 로라를 위해 신사 방문객을 맞을 준비를 하던 장면이 겹쳐진다. 그러나 이 집은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유니콘의 뿔이 부러지듯, 그의 유년 또한 서서히 현실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지금 이곳은 교수에게 임대되었고, 다른 방은 하루 159달러에 에어비앤비 숙소로 제공된다. 문학의 기억은 그렇게 일상 속으로 흩어진다.
테네시 윌리엄스, 본명 토머스 레니어 윌리엄스 3세. 술과 허풍이 심한 아버지, 남부적 환상에 사로잡힌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그는 여덟 살에 세인트루이스로 이주하며 깊은 고립을 경험했다. 작은 체구와 예민한 성격, 남부 사투리는 놀림의 대상이 되었고, 아버지는 그를 ‘미스 낸시’라 부르며 조롱했다. 소년은 현실에서 도피하듯 책과 글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누나 로사를 위해 방 안을 하얗게 꾸미고, 유리 동물들을 모았다. 이 기억들은 훗날 『유리동물원』의 토대가 된다. 작품 속 어머니 아멘다는 과거의 영광에 매달리고, 아들 톰은 자유를 갈망한다. 로라는 유리 동물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지키며 살아간다. 그녀가 아끼는 유리 유니콘은 순결과 고독의 상징이다.
톰은 어느 날 직장 동료 짐을 집으로 데려온다. 그는 로라가 학창 시절 짝사랑했던 남자였다. 기억에 의존해 고른 드레스를 입고, ‘라 골론드리나’에 맞춰 춤을 추던 순간, 짐은 실수로 유니콘의 뿔을 부러뜨린다. 그러나 로라는 말한다. 이제 보통 말이 되었다고. 유리는 아무리 조심해도 쉽게 부서진다고.
그 순간 로라는 잠시 현실로 나아갈 용기를 얻지만, 짐은 약혼녀에게 돌아간다. 톰 역시 결국 집을 떠난다. 그러나 마음속에 남은 로라에 대한 죄책감은 그를 끝내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그는 세상 어딘가에서, 여전히 누이에게 자신을 잊어달라 애원한다.
『유리동물원』은 1945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윌리엄스는 이해받기 힘들던 동성애자였고, 불화한 가족과 억눌린 욕망을 시적인 언어로 무대 위에 올렸다. 그가 갈망한 것은 명성이었을까, 아니면 부러지지 않는 유리 같은 평범한 삶이었을까.
나는 다시 아파트를 바라본다. 톰이 오르내리던 비상계단은 어디쯤이었을까. 맞은편에 있다던 파라다이스 댄스홀은 사라지고, 아파트만 길게 늘어서 있다. 이 집은 박물관이 되지 못한 채 여러 사람의 삶을 품는다. 유니콘이 평범한 말이 되었듯, 그의 집도 일상의 공간이 되었다.
카메라에 건물을 담는다. 세월은 흘렀지만, 작품은 여전히 무대 위에서 살아 있다. 언젠가 이곳에 하룻밤 머물 수 있다면, ‘라 골론드리나’를 흥얼거리며 창가에 서 보고 싶다. 제비는 떠났지만, 푸른 장미를 든 로라의 환영은 아직 이 어둠 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듯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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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숙 수필문학가협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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