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동네 리틀 사이공의 베트남 커뮤니티는 공산 베트남 정권의 대표자들이 그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가든 그로브와 웨스트민스터 시의회의 협조를 받아 단호한 결의를 보이고 있다.
북한 용천 구호성금을 LA 한인회가 여기도 갖다주고 저기도 갖다주며 양다리를 걸친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1975년 4월23일 미국 포드 대통령의 미군 철수명령으로 1주일만에 수도 사이공이 함락되고 자유 월남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월남의 자유수호를 위해 한국군 5천 여명과 미군 5만 8천여명이 전사했고, 1,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미국의 전비가 물거품으로 사라진지 벌써 30년이 다되어 간다.
10년이라는 오랜 전화에 찌들고 부정부패에 시달리면서 전쟁이 종식되기만을 기다리던 자유월남 국민들은 민주주의도 좋고 공산주의도 좋으니 통일만 되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공산 월맹의 선전에 속아 ‘해방의 날’이 곧 ‘인민의 낙원’이 되는 날이라고 붉은 기를 흔들며 맞이했던 그날이 악몽의 날로 변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지난날 월남에서 무질서하게 자유와 민족주의를 부르짖던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수십만명의 월남인들이 공포의 강제 수용소에서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지난날을 후회해야 했다.
공산 베트남 정권은 과거 자유월남에서 공무원, 정당간부, 군인, 경찰관, 종교지도자, 지식인, 작가였던 80여만명을 체포 구속했다. 그리고 강제 수용소나 황무지에서 수로, 농업, 건설공사를 하는 소위 ‘신경제 지역’에 집단 수용하여 강제노동과 끝없는 사상교육을 강행했다.
상황은 마치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유태인을 학살한 강제 수용소의 실정과 같았으며 고통에 견디다 못한 인사들은 자살을 서슴지 않고, 때로는 탈출을 기도하다가 잡혀 처형되곤 했다고 한다.
비극의 명사 ‘보트 피플’을 기억할 것이다. 탈출에 성공하는 확률이 50%도 못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산당 관리들에게 수천달러의 뇌물을 주고 해상 탈출을 시도했다. 그중 20여만명이 굶어죽고 수장되었으며 1천 여명의 부녀자들이 해적들에게 강탈당했었다고 한다.
표류 난민들은 천신만고 끝에 해안에 닿으면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거나 배를 부셔버리는 등 배수진을 치고 구호를 요청했지만 국가이익을 앞세운 주변 동남아 국가들은 모두 이를 외면하고 추방하였다.
예를 들면 말레이지아는 4만여명의 난민을 태운 300척 가량의 난민선을 무작정 공해로 추방했으며, 인도네시아는 월남 난민의 유입을 막기 위해 해상 봉쇄를 단행했고, 태국은 월남 난민을 공산 베트남에 강제 송환했다. 감상적인 인도주의가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 속에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절실히 느껴야 한다.
과거 베트콩의 창립 멤버였으며 월남 임시혁명정부의 법무상도 ‘보트 피플’이 되어 탈출에 성공하여 프랑스로 망명해 “설마 했는데, 북의 속셈을 너무 몰랐다”고 증언하고 있다.
우리도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박종식 / 예비역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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