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열면 세상이 보인다’
▶ 역사의 언덕에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던가요?
이 말은 지난 8월 17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천국에 가신 여해(如海) 강원용목사님에게 알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당신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한국의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말한다’고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분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의 자서전 「역사의 언덕」을 다시 보았습니다. 이 책은 지난 1993년 일흔 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빈들에서」라는 이름으로 세 권 분량으로 출간한 적이 있던 자서전을 십년이 지난 후에 5권의 책으로 개정하여 출간한 책입니다.
저자는 1917년 북간도 용정에서 출생하여 기독교인이 되어 유년시절은 물론 젊은 시절로부터 하늘의 부름을 받기 직전까지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았던 인물입니다. 본인의 말대로 호랑이같은 인상을 가졌던 저자는 조금도 타협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에 기초한 삶이었습니다. 초창기 극단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은 아버지의 음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북에서 이남으로 아들을 찾아온 아버지를 자신의 집에서 나가달라고 요구하기에 까지 이릅니다. 그 길로 아들의 집을 나서 이북으로 돌아갔던 아버지는 결국 3.8선이 막히고 6.25전쟁으로 말미암아 생이별 끝에 눈을 감기까지 다시는 아들을 만나 보지 못합니다. 아들은 나이 70이 넘어 그 이야기를 자서전에 꺼내면서 애통하고 절통한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후회합니다.
그렇게 극단적이고 보수적인 신앙을 가졌던 저자는 한국이 근대화 되고 현대화되는 역사의 소용돌이를 온 몸으로 겪으면서 진보와 보수사이에서 대화와 타협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전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 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2지대에 내가 설 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중간,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Between and Beyond) 살고자 했던 나는 항상 양극 사이에서 좁고 험한 길을 걸어야 했다. 나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중간파, 때로는 회색분자 취급도 받았다. 그러나 어느 편은 절대 선이고 그 반대편은 절대 악이란 사고방식은 옳지 않다고 보았기에 이를 해소하고자 1959년부터 크리스챤 아카데미 운동을 시작하면서 ‘대화’로 각 방면의 대립을 해소하고 화해의 길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이 책의 부제는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나의 현대사 체험’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중간에 서 있었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오늘날 어느 젊은이가 우리 정치는 왜 이 모양밖에 되지 못하는지, 왜 국민들은 정치에 희망을 갖지 못하고 불신하게 되었느냐고 묻는다면,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내가 젊었을 때 건국의 기초를 닦는 역사적 책임이 우리 세대에 주어졌건만 그 역사적 부름에 우리가 만들어낸 역사적 응답이라는 게 그렇게 뒤틀리고 기형적인 세상이었다. 그러니 우리 세대는 모두가 죄인이다. 두 눈 멀쩡히 뜨고서 나라를 토막내고 가장 저급한 정치의 씨앗을 뿌려 놓았으니 우리 세대 모두는 그 죄인이며 그 피해자이다”.
이 책은 자서전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개인의 인생을 기록해 놓은 책이 아닙니다. 이 책은 역사의 격랑을 굽이쳐 왔던 한국 현대사의 기록입니다. 그것도 한국 현대사에 변방인으로서 체험한 기록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 역사의 현장, 한 복판에 서 있던 인물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저자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한국의 현대사를 이끌어 나갔던 인물들과의 만남을 엿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해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의 언덕」에서... 이미 이 책을 기록해 놓은 분은 가셨지만 이 책을 통하여 사람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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