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표준어인 아귀어보다는 아구어라고 불러 아귀어로 조리한 음식 이름도 아구찜 도는 아구탕이라 한다.
아귀어(餓鬼魚)의 유래는 불교의 아귀도(餓鬼道)에서 연유된 것이라 한다.
우리말에 음식을 탐하는 사람을 걸신(乞神)들렸다하는데, 이 아귀귀신은 입이 커 음식을 탐하지만 목구멍이 작아 바늘귀처럼 작아 막상 소화기관에 들어가는 양은 적어 항상 굶주림에 허덕여 몸이 앙상하게 말라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귀어는 입이 크고 탐욕스러워 배를 갈라보면 자기 몸보다 큰 상어류나 큰 물고기등은 물론 음료수캔 같은 것들이 나온다. 차리리 아귀어라는 이름보다는 물고기의 형태나 생태로 봐서 [자산어보]에 기록된 것처럼 조사어라는 이름이 어울릴것 같다. 영어에서도 낚시꾼 물고기라
는 뜻을 가진 Angler Fish라고 한다. 이런 이름을 같게 된 이유는 아귀어는 머리가 커서 헤엄을 잘 치지 못해 가슴지느러미나 배지느러미로 바다 밑을 유영하면서 입 바로 위쪽에 낚시대라고 하는 안테나 같은 것이 달려 있다.
안테나와 같은 곳 끝 부분에 실처럼 붙어있는 흰 피막을 흔들면서 물고기를 유인해 잡아먹기 때문이다. 어쨌든 아귀어는 아구어 말고도 지방마다 각각 사투리가 다 있었는데, 부산, 경남지방에서는 아귀어를 물곰이라 불렀다. 이 물곰이라는 이름도 경상도의 센 발음으로 물꽁이라 했고, 이외에도 물돔, 배기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럼 아구어는 어디 말인가 1543년 이행(李荇)이 전국의 특산물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놓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에도 아귀어는 나와 있지 않으나 다만 정약전이 흑산도에 유배되어 16년간 살면서 1814년에 쓴 [자산어보(玆算魚譜)]에 보면 조사어(釣絲魚)라는 물고기가 있는데, 그 속명은 아구어라고 하였으니 아구어라는 말은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의 사투리라 할수 있겠다.
이 못생기고 먹을 게 없는 아귀어가 그물에 걸리면 재수 없다고 바로 바다에 버렸다해서 인천지방에서는 물텀벙이라고 불렀고, 부산을 비롯한 경상도 지방 역시 아귀어가 그물에 걸리면 바다에 도로 버리거나 어시장 한구석에 내동댕이치는 천덕꾸러기였다.
이렇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아귀어를 언제 부터 먹게 되었을까?
아귀어를 찜으로 만들어 대중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마산의 아구찜이라 할수 있으나 아귀어를 먹기 시작한 것은 부산이 먼저다.
1967년경 부산의 음식을 비교적 자세히 기록해 놓은 박원표(朴 元杓)의 [부산고인록(釜山故人錄)]어디에도 아귀어요리에 관한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부산에 아귀어요리가 없었던것은 아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은 전국에서 몰려 온 피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이로 인해 먹을거리도 다양한 형태로 등장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후 50년 중반에 아귀어는 물꼼찜이라는 이름으로 서면 미군부대 옆 물탱크 근방에 술도가가 있었는데, 이 술도가 창고에서 할머니 두분이 생아귀어를 쪄서 양념장에 찍어 술안주로 먹을수 있도록 조리했고, 충무동 썩은 다리 옆 판자집에 생아귀로 물꽁찜을 해서 파는 집이 있었다.
그 외에도 물꼼집은 서면일대에 몇집이 있었으니 비록 음식 이름은 다르다해도 아귀어찜은 마산보다 부산이 먼저라 할 수가 있다.
이렇듯 부산의 몰꽁찜이나 아구찜은 생아귀어를 주 재료로 한다.
그러나 아귀어 요리를 대중화시킨 마산의 아구찜은 마른아귀어가 주 재료이다. 마산의 아귀어는 언제 부터 요리를 했을까? 60년대에는 마산의 오동동, 동성동 골목을 통칭 오동동이라 불렀으며 마산어항(魚港)의 중심지로 선창이었다. 이곳은 오동동타령의 가사에 나오듯 멋쟁이 기생들의 장구소리가 들리고 한량들의 기생놀음으로 밤을 지새는 요정과 술집들이
많았던 곳이다.
돈많은 한량들이 요리집에서 요리를 즐기며 기생놀음을 할때 선창의 초가 선술집에서는 장어국을 안주로 무학산 기슭에서 솟아나는 맑은 물로 빚은 소주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곤 했다 한다. 아귀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마산의 향토언론인인 고(故) 김형윤(金 亨潤)선생이 쓴 마산
야화(馬山野話)에 등장한다.
김형윤 선생이 1970년 10월부터 마산시사를 편찬하면서 원고를 쓰기 시작했고 이 책에 아구라는 음식이 3~4년전만해도 바다에 버리던 아구가 술안주나 밥반찬으로 등장했다고 하니 대략 잡아 1966~67년으로 생각되나 박 영자 할머니등 아구어요리를 하는 분들의 구전에 의하면 1964년이라고 한다.
이때 요정골목 한 구석에 위치한 초가로 된 간판도 없는 선술집(현 마산시 동성동 186번지 한국장 앞:현재 집이 헐린 상태로 있음)주인 혹부리할매(턱밑에 큰 혹이 나 있어 붙여진 별칭)가 장어국을 끓여 팔았는데, 1964년 어느 추운 겨울날 어부들이 마산어시장에서 못생기고 재수없게 생긴 아귀어를 들고 와 할무이! 이 괴기로 안주하나 해 주소!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혹부리 할머니는 참 밸일도 많다! 이 코 질질 흘리는 못생긴 괴기를 오데 쓸라꼬 재수없게 스리 ..일없소!하면서 작은 봉창문 밖으로 이 아귀어를 내동댕이쳤다.
그러던 어느 봄날 혹부리 할머니가 시장에 갔다 오던 중 처마 밑에 마른 명태 같기도 하고 마른 가오리 같은 어포(魚脯)가 있어 주워 보니 그게 바로 자신이 버린 아귀어인지라 이것을 같다 무와 된장을 넣고 자작자작하게 아귀찜을 만들어 선술집을 찾는 어부들의 술안주로 내 놓으니 그 맛이 각별한지라 마산에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이어 1964년경 속칭 오동동 골목이라 불리던 동성동51번지에서 역시 장어국을 팔던 박영자 할머니와 그 옆골목의 구강할매가 마른아귀어에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을 넣고 찜을 하는 마산아구찜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80년대 만해도 마산에는 각 가정의 옥상에 아구덕장을 무색케 할 정도로 집집마다 아귀를 말렸으며 아귀덕장이 여러 군데 있었으나 지금은 마산교도소 뒷편에 한군데에서 12월 한달 동안만 아귀어 덕장을 운영한다. 여기에 마산을 비롯한 경상도에서 물꽁으로 알려졌던 아귀어가 아구어로 불려지게 된 사연도 재미가 있다.
혹부리할머니가 된장을 넣고 마른 아귀어를 찜으로 하거나 아귀어국을 끓였고, 지금과 같은 마산아귀어찜을 개발 한 것은 전남 신안에서 마산으로 시집을 온 마산진짜원조초가아구찜집의 박영자 할머니이며, 이 할머니는 마산의 아귀어찜을 자기의 고향말로 아구찜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마산아구찜의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지금은 혹부리할머니는 세상을 떠 없지만 오동동, 동성동 골목에는 아구찜집이 약10여개 업소가 성업중에 있다.
우리나라의 아귀어찜은 4가지로 분류할수가 있는데, 마른 아귀어를 주재료로 하는 마산아구찜, 생아구를 주재료로하는 부산아구찜, 생아구에 전분 대신 찹쌀을 넣는 동래찹쌀아구찜, 아귀와 함께 해물을 넣는 인천의 물텀벙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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