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주부>
어둡고 추운 저녁이었다. 불빛이 새어 나오는 학교 강당에서는 기금 마련을 위한 장터가 열리고 그릇이나 화장품, 장식품들을 팔고 사느라 시끌벅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딸은 강당에서 친구들과 놀고, 나는 밖에서 둘째 아이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아이가 자석에 끌린 것처럼 다가간 강당 문 앞의 분수대에는 딸아이와 같은 반인 애니가 혼자 놀고 있었다. 학부모회 임원인 애니의 엄마는 강당 안에서 애니의 동생을 옆구리에 안은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춤추듯 분수대 가장자리를 돌던 애니가 갑자기 균형을 잃고 물에 풍덩 빠졌다. 애니의 몸이 연못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조금 올라왔다. 애니는 접영을 하려고 했는지 머리를 들고 양 팔을 나비처럼 크게 휘저었다. 그러나 머리는 물 안에서만 움직였을 뿐 물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네 살인 아이의 몸은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 때 나도 모르게 달려간 내가 애니의 허리를 안아 올리고 있었다.
차갑게 젖은 아이를 안고 강당 안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달려 온 딸아이가 벗어준 니트 가디건으로 아이의 몸을 가리며 젖은 옷을 벗겼고, 애니 엄마는 다른 옷을 가져 오기 위해 차로 뛰어갔다. 아이는 와들와들 머리에서 발끝까지 경련이 일듯 온 몸을 떨었다. 차를 세워둔 곳이 멀었던지, 아이 엄마가 좀처럼 오지 않아서 나는 마음이 급했다. 옆에서 팔다 남은 물건을 정리하고 있던 나이 든 부인에게 아이 엄마가 올 때까지만 아이를 감싸도록 테이블보를 빌려 달라고 했다. 자식과 손자손녀가 포도송이처럼 많다는 우아한 부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I’m sorry, dear. I must go now.”
“Please, I need something dry for her. She is trembling. Don’t you see?”
그 때 털이 달린 가죽 외투를 입은 중년 남자가 흙이 묻은 깔개 몇 장을 갖고 와 내게 주었다. 깔개는 걸레보다 더러워 보였고 기가 막힌 나는 말없이 남자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딸아이의 가디건으로 아이를 싸서 안고 있는데, 애니의 엄마가 왔다. 나는 애니를 그녀에게 주고 집으로 오기 위해 내 아이들을 챙겼다. 아이들을 데리고 강당 밖으로 나오는데, 등 뒤에서 그녀를 에워싼 엄마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But, Stacey, honey. She knows how to swim. Doesn’t she?”
“Did you see? Did you see her swimming?”
그녀는 잠시 대답을 하지 않았다.
“I mean, she could have come out, anyway. She took the swimming class.”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차가운 날씨에 물에 빠진 아이를 보며 그들처럼 ‘Come on’을 외치고 아이를 격려할 수가 없다. 애니가 감기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태우고 집으로 오는 길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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