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평(아동극작가)
또 한번의 새해가 초청하지 않은 손님처럼 내 곁에 찾아왔다. 초침(秒針)은 나를 데리고 달음박질 치듯이 달려갔고, 분침은 한 시간에 60이란 칸을 뜀박질하듯 달려갔으며, 시침은 하루에 스물네칸을 부지런히 밟고 넘어가더니 끝내 한 해의 해그름이란 종착역(終着驛)에 우리를 아니, 나를 내려놓고 또다시 달려가고 있다.
내가 세월의 흐름이란 나울에 떠밀려 살아오면서 무수히 들어온 이 시계바늘 소리가 ‘스크루지’ 영감의 가슴을 예듯한 처절하고 각박한 현실의 소리라면 78살을 바라보는 이 시점(時點)에서 내 귓전에 남아 있는 또 다른 소리가 있다.! 그 소리는 지워버릴 수도 없고, 좀처럼 지워지지도 않는 내가 성장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들어 온 추억과 낭만이 담겨 있는 뱃고동 소리인 것이다. 그 소리는 손님을 담아 실고 떠나갔고 또 새로운 손님을 실고 와서는 부두에 풀어놓듯이 세월을 담아 실고 떠나갔고 또 새로운 세월을 실고 온 소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뱃고동 소리의 짙은 여운(餘韻) 때문에 곧 출간(出刊)될 나의 네번째 수필집의 제목을 <뱃고동>이라고 붙였고, 그 책의 머릿글에 뱃고동에 대한 회상(回想)을 이렇게 적어 보는 것이다.
뱃고동 소리! 이 소리는 파도 소리와 함께 내가 어릴 적부터 들어오던 소리다. 어업조합(漁業組合) 이사(理事)인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갯마을로 그리고 항구도시(港口都市)로 옮겨 다니며 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이란 낯선 땅에 이민와서 31년 가까이 살아 오면서도 그리고 내 나이 80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 소리는 내 귀에 환청(幻聽)처럼 들려오는 소리인 것이다.
그러기에 내가 쓴 허구 많은 수필 속에 그리고 동극작품 속에 이 파도 소리는 배음(背音)같이 깔려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 작가의 작품이 그가 자라온 환경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나는 성인희곡작가(成人戱曲作家)로 데뷔하여 아동극 작가로 발길을 돌렸고 또 한국에서의 아동극 개척(開拓)의 삽질을 하다 말고 일시적인 생각 잘못으로 미국이란 이국(異國)땅에 와서 살면서 이곳 미주 한국일보에 19년 동안 숱한 수필을 써왔다. 그래서 이미 3권의 수필집을 내놓았다. 그 첫번째 수필집이 <미국에 산다>였고, 두번째가 <막은 오르고 막은 내리고>이고, 세번째가 <민들레의 현주소>이다. 그리고 이번 제4 수필집이 <뱃고동>이다. 실린 모든 글들은 내가 한국에서 살아 온 이민 이전의 삶의 편린(片燐)과 이민 와서 해바라기 같이 고국땅을 바라보며 아프게 살고 있는 이민생활의 삶의 빛과 그림자의 기록인 것이다.
오늘도 나는 내 문학과 연극의 요람(搖藍)이었던 한국 남단의 항구도시, 통영 항구의 뱃고동 소리를 귓전으로 들으며 미국 하늘의 이방인(異邦人)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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