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주 로녹대학(Roanoke College) 출신의 무장항일 독립투사였던 성천 박희병 지사의 묘비제막식이 13일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렸다.
덴버한인회(회장 정일화)에 따르면 ‘콜로라도 한인시조 성천 박희병 지사 100주기 추모식 및 묘비 제막식’으로 명명된 이날 행사는 덴버의 리버사이드 공동묘지 유택에서 구본우 샌프란시스코 총영사, 콜로라도주 한국전 참전용사 대표단 등 주류 및 한인인사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콜로라도 주립대학 관현악단의 연주와 덴버한인천주교회 성가대의 ‘현충일의 노래’ 합창, 헌화, 추모사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행사는 주류언론인 로키마운틴 뉴스와 덴버 포스트에서 취재를 하는등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으며 이들 언론사의 홈페이지에는 묘비제막식 관련 사진과 기사가 올려져 있다.
덴버한인연합회의 정일화 회장은 “주류 언론이 한인 커뮤니티 행사를 보도한 것은 콜로라도 한인사회 형성 후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앞으로 박희병 지사 묘역을 한인사회의 성지로 가꾸어 나가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1871년생인 박희병 지사는 1900년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과 함께 버지니아주 로녹 대학에 유학, 버지니아주와 인연을 맺었다.
그후 박 지사는 평안도 운산금광에서 외교부 관리로 미국 광산기술자들과 함께 일하면서 콜로라도와 인연을 이었고 광산기술 습득을 위한 조선 청년들과 자신의 조카이자 무장 항일투사인 박용만 장군과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씨 등을 콜로라도에 파견, 유학을 시키기도 했다.
그는 1906년 조정의 명으로 멕시코 한인 이민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미국으로 오는 도중 을사5조약이 발효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덴버에 정착하게 됐다.
그후 덴버에서 600여명의 한인 이민자를 부양하면서 한인 경찰학교와 군사학교를 세워 무력항일투쟁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1908년 예정된 덴버 민주당 전당대회를 기해 이승만, 이상설, 안창호 등 독립지사들과 ‘대한인애국동지자대회’를 준비하던 중 1907년 6월 13일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한인들은 오늘날 콜로라도 한인사회의 초석을 놓은 한인시조로 기리는 한편 콜로라도 한인이민 100년사 제작, 박희병 지사 묘역의 한인사회성지화 및 100여년전 콜로라도 남부 프리메로 탄광 매몰사고로 숨진 한인 선조들에 대한 추모비 건립(2008)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박광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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