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뜰에 활짝 핀 키꺽다리 빨간 코스모스는 가는허리를 바람에 맡긴 채 하늘하늘 춤을 추고 있고, 풀숲의 귀뚜라미는 ‘또르르 또르르’ 목청껏 울음 우는 합창소리가 요란한 걸 보면 가을이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이 분명하다. 8월 중순 연중행사로 온가족이 함께 출동하는 여름휴가를 노스캘로라이나(Outer Banks, Corola Beach)로 정하고, 바다 전경이 훤히 보이는 비치하우스에서 일주일간의 오붓한 휴가를 위해 계획했던 그날이 왔다.
저녁 한 끼 하루만 푸짐한 식탁을 엄마가 당번 해달라는 딸의 주문에, 모두가 좋아하는 양념한 갈비와 손자들이 좋아하는 김치를 아이스박스에 담고 김치를 먹자면 밥을 찾을 테니(자기집에서는 양식만하니까) 밥솥과 쌀을 싣고 고속도로로 달려간다. 불경기라고 모두들 떠들지만 길에는 비싼 가스를 마구 태우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줄줄이 바닷가로 향해가는 피서객 교통체중에 짜증이 났지만 다행이도 2살 반짜리 손녀를 태우고 가는 우린 아이의 애교와 재롱 속에 지루함 없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섯 개의 침실과 다섯 개 반의 화장실을 갖춘 비치하우스는 우리 식구 열다섯 대가족이 지내기에 불편 없을 정도로 시설이 훌륭해 나무랄 데가 없다. 에메랄드빛 고운 물결이 넘실대는 바닷가로 졸라대는 손자들의 성화에 서둘러 달려 나가고 딸들이 여덟 명의 손자들을 돌보는 베이비시터를 대동하고 왔으니 난 손자들의 친구로 한가하게 은빛 모래정원에 쳐놓은 사랑의 텐트에 앉아 출렁이며 밀려오는 파도소리와 손자들의 왁자지껄 깔깔 웃음소리를 들으며 행복한 휴가의 첫날을 맞는다.
플라스틱 자그마한 삽으로 깊이 파낸 모래밭에 얼굴만 빠끔히 내밀고 온몸을 모래 속에 숨기느라 구슬땀들을 흘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조개껍질을 주워 바구니에 담는 천진난만한 손자들의 일거일동이 너무나 귀엽다. 제가끔 부기 보드를 끌고나가 넘실대며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재빠르게 가르며 파도를 넘나드는 손자들의 모험심에 하루가 다르게 검게 그을린 얼굴들.
하얀 이를 아낌없이 드러내느라 모두들 카메라를 들이대면 제가끔 ‘치이즈,’ ‘김치’하며 포즈를 취해주는 그들 덕분에 땡볕아래서 초점 맞추며 수없이 찍어대는 땀 범벅된 사진사(?) 할머니를 누가 말릴까. 파도는 순결한 모래사장에 작은 먼지라도 내려 앉을까봐 애태우며 밀려와 솜털 같은 모래를 적시우며 물새들은 노을에 붉게 물든 부리들을 벌려 고운 울음소리를 내며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닌다.
곱디 고은 모래사장에 여덟 손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써놓으면 자기 이름을 찾아내고 좋아라하는 아이, 거북이, 물고기 모래조각품을 만들어 선보이는 서툰 조각가에게 박수쳐주며 환호하는 손자들의 티 없이 밝은 미소 속에 하루하루가 쏜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
아이들이 침대에 들면 딸, 사위, 할아버지와 다함께 포커(Taxas Hold’em)게임을 즐기고, 동 터오는 새벽녘 딸들과 해변에 나가 거닐 때면 붉게 떠오른 태양은 사정없이 은빛바다 수면위로 쏟아져 내려 온통 바다를 붉게 물들여 놓고 그 망망대해를 자유로이 휘젓고 다니는 갈매기 떼들은 낭만 가득 실은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다. 그 뿐인가 불볕 더위 속에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사장은 모래찜질에 백퍼센트 효과를 안겨주고 곧바로 짭짜름한 찬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묘미는 바다에서만 맛보는 것이리라. 쳇바퀴 돌듯 직장과 가정에서의 바빴던 일상들을 잠시 내려놓고 느긋하게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다가 주는 즐거운 행복 속에 마음껏 웃음꽃을 피우며 온가족이 한바탕 밝은 화목의 세상을 만드느라 분주했던 날들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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