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여행이고 뭐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만 나고 겁이 덜컹 난다.
고국방문 중 오랜만에 만난 동서와 용인 외곽에 특별히 맛있는 음식점이 있다니 호기심이 발동해 달려갔다. 훤하게 트인 길가를 꽉 메운 만발한 벚꽃은 모처럼 막내동서와의 데이트에 흥을 더해준다. 외부로 보기엔 그저 그런 식당인데 내부는 멋진 그림과 빈자리 없이 꽉 채운 손님은 모두 여인천하다. 남편님들은 일터로, 부인들은 부지런히 집안일을 마치고 친구들과의 정다운 점심모임 일게다. 한쪽엔 동창회 모임인 듯 저마다 ‘얘 쟤’ 하며 격이 없이 떠드는 중년의 여인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음식이 하나씩 야채샐러드를 시작으로 줄줄이 나온다. 나의 식탐이 절제를 잊어버리고 나오는 음식마다 빈 접시를 내놓는 열심으로 이젠 ‘끝’ 했는데 이제부터가 메인식사라니. 그래도 동서와 몇 년 만의 오붓한 식사에 입맛을 구길 필요가 뭐 있겠나 싶어 오늘만은 꾹 참고 마음껏 욕심을 내었다. 그런데 욕심이 과하면..., 오랜만에 형님 고국나들이라고 푸짐한 저녁식탁을 마련해놓고 가족들과 둘러앉았는데 난 그림의 떡이다.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동서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한 다양한 음식이 줄줄이 유혹하지만 내 소화기가 잔뜩 화가 나 있으니 참 딱한 일이다.
원래 위가 좋지 않은 사람의 탈은 쉽게 낳지를 않아 잔뜩 벼르던 고국의 먹걸이를 외면한 채 미국으로 돌아와 나의 주치의를 찾았다. 바라는 위내시경은 1년 반 전에 했으니 이번엔 CT촬영을 해보잔다. 25분정도의 시간 속에 숨을 들여 마시세요, 내 쉬세요를 거듭했는데 끝났다고 일주일 후면 결과가 나온단다.
전화벨 속에 목소리는 잔뜩 기다리던 나의 주치의의 목소리다. “신장(콩팥) 오른쪽에 물혹이 두개가 발견되었는데. 한개는 3cm, 또 하나는 7mm 인데 희끄무리한 것이 보인다고 정확성을 알기위해선 초음파 검사(울트라사운드)를 해보는 것이 좋겠단다. 순간 어떻게 내 몸에 물혹이라니 우울함이 요동을 치는데 예약이 쉽지가 않아 애를 태우고 주치의까지 예약에 힘을 가해(?) 열흘 후로 무난히 예약날짜가 잡혀졌다.
살고 죽는 건 하늘의 뜻일진데 벌벌 떨고 있음은 얼마 전 오빠의 담도암 수술로 온가족이 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울함이 사라지지 않은 상태일게다. 예약된 날 진료 의자에 길게 누워 알 수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검게 나타나는 모니터를 올려다보면서 한껏 겁에 떨던 나. 차분한 마음을 갖으려고 무던히도 애쓴 보람도 없이 60을 넘은 나이에 어린 아이같이 출렁 출렁 눈물이 솟구치는 겁쟁이임을 숨기지 못했다.
초조히 기다리던 나의 신장 초음파결과가 주치의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성급하게 열어보니 서두에 ‘I am happy’ 라고 적혀있다. 아무 ‘이상 없음’이다. 요즈음 아팠다 하면 거의가 암이라니 겁 많은 사람이 몇 날 몇 일을 별의별 고민에 휩싸여 잠 못 이룬 밤마다 새삼 건강이 최고야를 외쳐대며, 잘 먹고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그 얼마나 황홀한 경험인지 자기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위대한 일이며, 자기 두 눈과 귀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경이로운 것인지 잊고 살기 일쑤였으니.
결국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경이로움이요 감격이요, 황홀이요, 축복이다.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삶이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건강관리와 더 보람 있는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유설자
워싱턴여류수필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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