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그의 이름 석 자만 떠올려도 가슴이 뛰던 때가 있었다. 시대의 모순에 온몸으로 맞섰던 저항시인 김지하는 어느새 신화가 되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들어 끝내 신화로 남아 있길 거부하고 여느 보통 사람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급기야 지난 대선 땐 그토록 자신을 핍박했던 독재자의 딸을 조건 없이 지지해 세상을 놀라게 했고 이를 전후해 황당한 말들을 간단없이 쏟아내자 그가 고문 후유증으로 그런다는 둥 온갖 억측을 자아내게 했다.
대선을 전후해 김씨가 쏟아낸 독설과 막말은 가히 ‘나꼼수’ 수준을 능가한다. ‘미워하며 닮는다’더니 자신도 빨갱이로 몰려 죽었다 살아났으면서도 툭하면 왼 빨갱이 타령이다. 백낙청 교수와 고 리영희 선생도 그렇고 문재인을 지지한 48% 국민도 ‘공산화를 좇는 불순세력’으로 매도한다.
안철수는 ‘깡통’이고 “윤창중이란 시끄러운 사람을 인수위 대변인으로 앉힌 건 잘한 것”이고, 국고보조금을 받고 중도 하차한 이정희에 대해서는 “쥐새끼 같은 년, 죽여야지”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밉지만 이정희도 엄연히 남편이 있는 여자가 아니던가. 아무리 화가 나도 말은 가려 해야 하는 법, 김씨가 설마 자기 아내에게도 그렇게 함부로 막말을 할 수 있을까. 아닐 것이다.
지난 4일 39년 만에 내려진 민청학련 사건 무죄 판결에 대한 소회를 묻는 질문에 김씨는 “보상금 때문에 재심을 신청했는데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튿날 있은 D일보와의 인터뷰에서도 “난 지금 돈이 필요해. 아들 둘이 대학엘 못 갔어”라며 역시 돈타령을 했다.
김씨가 정말 그토록 가난했던가. 아니다. 그의 장남은 일찍이 모 예술전문대를 나왔고 차남은 영국 런던의 명문 미술학교를 다녔다고 자신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서 자랑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아무래도 “돈이나 많이 줬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 속에 변신의 진짜 이유가 있는 건 아닐까? 돈을 입에 달고 사는 걸 보면 결국은 돈이 왕년의 천재시인 김지하를 ‘너무나 인간적인’ 속물근성의 우리네 ‘보통 사람’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문 후유증과 7년간 독방생활을 했다는 주장 역시 과장된 것이다. 당시 김씨는 워낙 국내외에 걸쳐 문명을 떨친 덕에 자신의 회고록 ‘흰 그늘의 길’에서 밝혔듯 김근태나 인혁당 관련자들처럼 큰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그는 결코 오늘날 그 나이에 정신 줄을 놓을 만큼 모진 가혹행위를 당하지도 않았고 7년간 홀로 독방에 갇혀 옥살이를 하지도 않았다.
유신시대 최대 피해자이면서 어찌 보면 최대 수혜자이기도 한 김씨는 시인으로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분명 필요 이상으로 과대평가되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과분한 대우를 받아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상한 시대가 그렇게 만들었지만 그의 시대적 역할은 민주화와 함께 끝난 지 오래다.
‘욕쟁이 입’을 자처하며 쏟아 내는 안하무인의 폭언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뿐, ‘시인의 언어’를 잊은 그는 이미 시인이 아니다. 비록 그의 육신은 살아있을지언정 혼백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사람이다. 스스로 시인이기를 포기한 김지하, 나는 오늘 그의 이름을 미련 없이 지운다.
<김중산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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