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 중앙에 놓여있는 빨간색 ‘가시 면류관’ 꽃은 오늘도 화사하게 피었다. 일년 반 전쯤 홍충남 신부님이 집에서 기르던 관목에서 떼어 주신 것이다. 내가 “인생으로 치면 오후 3시. 새로 시작하기엔 좀 늦고, 체념하기엔 이른 중년의 삶”이 버겁게 느껴진다고 불평하자, 그 다음 주에 가져다 주셨다. 꽃이 피었다 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고, 또 피어난다.
궁금한 마음에 홍 신부님께 꽃 이름을 여쭸더니, 오랫동안 키웠지만, 정작 이름은 모른다고 하셨다. 며칠간 식물도감과 인터넷을 뒤져 알아낸 이름은 ‘가시 면류관 (Crown of the Thorns)’.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릴 때 이 식물의 굶고 거친 가시 줄기로 면류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드리자, 홍 신부님은 크게 놀라고, 어린아이같이 기뻐하셨다.
홍 신부님이 얼마 전 세상을 떠나셨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좋은 성직자를 만나는 게 인생의 큰 축복 중 하나라고 하는데, 만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아 이별하게 돼 너무나 아쉽다.
제가 아는 홍 신부님의 이력은 대략 이러했다. 한국 강남 성공회 교회에서 목회하다 도미. 버지니아 성 십자가 성공회 교회를 3년간 섬김. 그 뒤 볼티모어성공회교회를 개척하고 은퇴. 가족으로는 부인과 아들 둘, 딸 하나가 있음. 집에서 요리와 청소 담당. 한국 군사 정권 당시, 도시산업선교회 임원으로 활동.
홍 신부님의 경력을 보고 처음에는 “진보 성향의 인사겠구나”라고 쉽게 판단을 내렸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신부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균형 잡힌, 합리적 사고를 지닌 분이셨다. 행동은 따르지 않으면서 ‘민중’과 ‘사회 정의’를 자신의 전유물인양 떠드는 사람에게는 따끔하게 충고하시는 용기를 보여주셨다.
‘민중’이나 ‘사회 정의’는 탁상 토론용이 아니라, 지금, 여기 가까이 있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라는 게 그 분의 말씀이었다. 실제로 신부님은 몸이 허약한 자신의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보셨고 교회를 떠난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도록 진심으로 노력하셨다. 홍 신부님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으셨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거의 꺼져 갔던 천국에 대한 소망이 되살아났다.
홍 신부님, 언젠가 다시 뵐 수 있겠죠. 그때까지 홍 신부님이 너무도 사랑하셨던 데레사 사모님에게 많은 웃음을 드리는 나그네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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