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 출마하여 권력다툼을 하는 일만 대개 ‘정치’라고 생각하지만, 실은 ‘서로 다른 입장과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모든 일’이 ‘정치’의 넓은 뜻이며, 여기에는 ‘타자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설득과 같은 언행’도 포함된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치적 언어’도 물론 존재하는데, 그 대표적 사례가 바로 ‘~빠’ 라는 단어다.
‘오빠 부대’에서 생겨난 이 표현은, 소위 ‘아이돌 그룹’이 가는 곳곳마다 쫓아다니면서 그 앞에서 밤을 새우는 10대 소녀들을 “쯧쯧,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며 내려다볼 때 사용하는 언어다. ‘누군가를 지지/응원하는 사람’이라는 지시적 의미보다 ‘자신의 정체성과 본분을 잊고 판단력이 완전히 흐려진’이라는 함의가 훨씬 강하다.
갑의 을에 대한 지지를 ‘한심하다’고 표현함으로써 갑의 지지행위를 조롱하고, ‘한심한 인간들이나 좋아할 대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에 지지받는 사람까지도 평가절하 한다. 이렇듯 ‘극도로 정치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표현이며, 선거의 ‘흑색선전’ 전략을 방불케도 한다.
예를 들어, 2013년 여름 브라질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보려는 관중이 300만명이나 운집하여 환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관중을 ‘교황 빠’라 부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것은 바로 ‘교황 빠’라는 표현이 군중뿐 아니라 교황에까지 불손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 300만명 중에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아마 대다수였을 것이고, 신자는 아니지만 교황의 사회정치적 견해에 동의하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이들도 섞였을 것이며, 그저 ‘교황님이 잘 생기셔서’ 무조건 좋아하는 ‘진정한 교황 빠’도 극소수나마 섞였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는 것은, 아이들이 훌륭한 인물들과 자신을 어느 정도 ‘동일시’하고 롤 모델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이다. 그런데 연예인을 롤 모델로 삼는다면 그 이유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어른 된 책임이며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태도이지, 그 아이들을 한심하다 책망만 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지지의 대상이 아이돌 그룹이 아니라 사회정치적으로 유명한 사람인 경우에는, 그 사람이 자신의 일상생활에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또, 지지 대상의 결함이나 실수도 인정할 수 있는 태도를 갖고 있다면, 얼마나 열정적인지와 무관하게 그 지지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합리성 여부에 대한 고려는 전혀 없이 누군가를 강력히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철없는 빠”로 묘사하는 일은 문제가 있다. 대상이 정치인인 경우, 유권자들을 주눅 들게 하여 정치 무관심을 부추기려는 저의를 의심할 수가 있다.
“나는 홍길동의 지지자”를 줄여 스스로 “나는 홍빠”라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이성적이고 진지한 대화를 원한다면 ‘~ 빠’ 라는 표현은 지양해야 했으면 한다. 다른 이에 대한 존중이 결여된 말이다. 이런 언어를 남발하는 태도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킬 수 있겠는지 회의가 든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