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지드가 문학잡지 편집장이었을 때 딱지 놓은 글이 나중에 작가의 자비 출판으로 출간되었다. 다시 읽어 본 지드는 ‘아차!, 내가 실수 했구나.’ 무릎을 쳤다. 건들거리며 사교계에 드나들며 예술인들의 모임이나 넘나들던 인사가 몇년을 두문불출하며 뭔가를 썼다니 그게 그거겠지, 하는 선입관때문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글로 형상화 시킨 프루스트는 한다하는 문인들 틈에 어정거리는 고급 룸펜이었다.
그러다가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몇 년을 두문불출 하며 써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의 고전이 되었다. 불란서 대학생들이 휴가가는 짐속에 꼭 들어 있다는 책, 지금은 코스코에서 몇푼되지도 않는값에 큰 통 가득 들어 있지만 한때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점에서 비싼 값에 집어들고 그 포근하고 달착지근한 질감을 오래 오래 즐기고 싶어 조금씩 조금씩 갉아먹던 과자, 마들렌드.
마들렌드를 좋아하면 고급스러운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든 그 책의 한 구절의 힘. 나도 그 책을 언젠가는 통독해야지.. 하는 욕심에 내게 남은 시간을 가늠하며 초조해 하곤 했다. 얼마전 어느 모임에서 대단히 해박하고 유쾌한, 저녁 내내 함께 떠들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을 것 같은 분을 만났다.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분에게 물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 전권 읽으셨어요? 잠깐 생각하는듯 하던 표정이더니 아뇨, 내 잃어버린 시간도 찾기 바쁜데 남의 잃어버린 시간 탐색할 시간이 어디 었어요? 푸핫! 버켓리스트가 넘쳐나게 담겨있던 현학적인 고전들이 와르르 쏟아져 버렸다. 잘가라. 데카메론, 잘가라, 오딧세이, 신학대전, 참회록, 유토피아, 신곡, 포크너, 김원우, 구운몽, 십자가의 성요한… 아아, 세상엔 책도 많았다.
쉽게 손이 가는 책을 읽으면서 옆에 쌓아놓은 친절치 않은 책들에게 미련을 두던 것도 욕심이었다. 남은 시간 가늠하지 말고 지금 내게 재미있는 책이나 읽자.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는 수도 없이 되읽어도 읽기 쉬우면서도 인간의 깊은 본질을 생각하게 하는 참으로 깊이 있는 책이다.
그의 다른 소설도 말은 소설이라 분류되지만 실은 묵상집이라 해도 좋은데 그의 책들은 모두 어린 왕자의 생각을 어른의 단어로, 어른 책의 부피로 확대해놓은 것이라 해도 좋을듯 하다.
그 자신이 비행기 조종사로 전쟁중엔 전투기 조종사이기도 했고 그 전후에는 아프리카와 남미로 가는 우편물을 실어 나르며 새항로를 개척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면 성인의 묵상집 같다.
벌거벗은 자신을 겸허히 마주보게 하는 고독이란게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광포한 힘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일깨워 준다.
그러면서 저 아래 어둠속에서 잠들어 있는 하나 하나의 미약한 존재가 얼마나 신비롭고 귀하며 보이지 않게 서로에게 이어져 있는지를 말해준다. 가늠 안되는 그 드높은 창공에서의 거리감, 밤과 낮을 넘나드는 속도감, 그런 것이 그로 하여금 깊은 신심의 수도자와도 같은 깨달음을 준걸까? 광활한 시계와 어둠, 수시로 찾아드는 자연의 예측불허한 힘이 그런 깨달음을 주었다면 우리 모두는 한번쯤은 조종사에의 꿈을 꾸어 봄직도 하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수백명의 승객을 싣고 자폭해버리는 조종사도 있다. 같은 상황에서도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의 믿음으로 다른 삶을 택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참으로 쉽게 너와 나를 가른다.
불행한 한 사람의 어리석은 선택은 자신에게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의 불행은 보이지 않는 세균처럼 퍼져 그 주위 사람까지도 불행하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서로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 내가 오늘 누구에게 잔인하지 않았던지, 나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몫을 가로채지 않았는지 매일 밤 점검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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