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달랐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회의 참석차 최근 워싱턴을 방문했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최 경제부총리와 이 총재는 두 기관장이 전통적으로 묵는 페어먼트 호텔에 숙소를 꾸렸지만 교감은 없었다. 폐막 기념촬영에서도 두 사람은 나란히 서지 않고 어정쩡한 거리를 뒀다.
지난해 9월 호주 케언즈에서 열린 G20 회의 때는 같은 호텔에서 묵고 기념촬영 때 나란히 포즈를 취했다. ‘척하면 척’ 논란을 빚었던 호텔 와인회동은 없었다. 최 경제부총리는 당시 “호주까지 와서 같은 호텔에 있는데 와인 한 잔 못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느냐”며 이른바 눈빛정책 공조로 구설에 올랐다.
거시경제 정책의 양대 수장이 만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지금처럼 경제여건이 어려울수록 더더욱 그렇다. 일부러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다. 다만 만남 자체를 공개하느냐 여부는 별개의 문제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를 어느 한쪽이 전하는 것도 어색한 일이다.
공식 채널이 아니라도 비공식 통로는 얼마든지 있다. “한국은행도 정부”라고 주장한 한은 전 총재가 있었지만 그래도 양측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 정도다. 당면 현안에 집중하는 정부의 정책이 정밀타격이라면 금리조정은 무차별적인 파괴력을 지닌다. 외압에 좌지우지되거나 흔들려서는 안 되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할 바에야 금통위원의 찬반표결로 통화정책을 결정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의 관계가 요즘 묘하다. 워싱턴에서 쏟아낸 발언도 달랐다. 메시지가 완전 딴판인 것은 아니지만 온도 차이가 확연하다. 이 총재는 통화정책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고 했다. 반면 최 경제부총리는 기준금리를 한 번 더 내렸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일종의 신경전이라고 할까.
포문은 최 경제부총리가 먼저 열었다. 그는 하반기 추가부양 카드 동원을 시사하면서 ‘한은 역할론’을 주문했다. 통화정책은 한은이 독립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는 전제를 뒀지만 방점은 “경제여건이 어려워지면 금리정책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데 있다.
금리정책 변화가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의미함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나아가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이 따라 올려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통화정책 비동조화는 이 총재가 이미 지난 3월에 언급한 것이지만 그래도 적정선을 넘은 발언이다.
이 총재의 반박성 메시지가 곧바로 나왔다. “통화정책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금리를 세 번이나 낮춘 나라는 많지 않다”고 항변하듯 강조했다. 이 총재는 이어 ‘재정 역할론’을 다시 한 번 거론했다.
앞서 이 총재는 지난달 9일 기자회견에서 “추경 요건이 엄격하고 재정 건전성을 비롯한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경기회복에 재정이 어느 정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그는 세수펑크가 경기회복에 부정적 역할을 했다며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기도 했다.
양측의 워싱턴 발언은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이제는 너희 차례라는 뉘앙스를 준다. 좋게 말하면 정책공조이지만 달리 보면 상호불신이다. 남의 정책을 두고 훈수를 두는 것도 남의 떡이 크다는 소리밖에 안 된다. 갖은 부양정책에도 그 효과가 신통치 않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한 볼멘소리기도 하다.
정부 일각의 바람대로 한은이 금리를 한 번 더 내릴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다. 하반기 미국의 금리인상은 예고돼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린 뒤 곧바로 따라가지 않는다 해도 한은이 다시 내릴 여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최 경제부총리가 정책공조를 다시 한 번 이끌어내고 싶다면 정공법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 총재의 말마따나 통화정책은 만병 통치약이 아니다. 세수펑크를 예산 불용으로 돌려막는 관행을 이번에는 끝내야 한다. 경기예측의 실패로 초래된 세수부족 사태를 세입경정으로 해결해야 마땅하다. 말끝마다 재정 건전성이 선진국에 비해 양호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추경 편성의 필요성을 정치권에 설득하는 것이 우선이다. 불편한 정책 연대가 불안해 보이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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