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가까이 된 일이다. 회계사 라이선스에 아직 잉크도 안 말랐을 때다. 점심을 먹고 막 올라오는데, 리셉션에서 날 붙잡는다. "문 선생님, 양도소득세 상담 전화인데, 대신 좀 받아주시겠어요?" 평상시 같으면 뺐을 텐데, 난 그 예쁘장하고 키가 작은 아가씨를 은근히 좋아하고 있었다. 그래서 호기롭게 말했다. "그까짓 거 뭐, 제 전화로 연결해주세요" 어깨를 꽤나 으쓱대면서 말이다.
질문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내가 해답을 정확하게 몰랐다는 것. 그런데 답변을 했다. 그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아주 명쾌하게 말이다. 마음속으로는 '나중에 담당자에게 전화를 다시 하라' 고 싶었다. 그러나 내 앞에는 애인(지금의 제수씨)을 소개해주겠다고 형 사무실을 일부러 찾아 온 동생이 서 있었다. 그들 앞에서 기가 죽고 싶지는 않았다 - 나 원 참.
굳이 변명을 하자면, 딱 부러지게 답변하기 힘든 것이 양도소득세다. 이번에 뉴욕 베이사이드에 사는 흥부가 임대 건물을 하나 팔아서 32만 달러의 양도소득을 벌었다. 기본 공제만 가정하면, 연방(IRS)에 11%, 뉴욕주와 뉴욕시에 각각 6%와 3% 정도. 그러면 양도소득의 20%가 세금이다. 여기에 투자소득세를 더하면(양식 8960), 내는 세금은 양도소득의 21%가 넘는다. 금액으로 따지면 7만 달러 가까이 된다.
그런데 만약, 팔지 않은 다른 건물에서 생긴 임대소득이 또 있다면? 가정하기 나름이지만, 그 임대소득이 5만 달러라면, 양도소득세는 9만 달러 가까이로 늘어난다. 퍼센트로는 27%가 넘는다. 왜 똑같은 양도건에 대해서 다른 소득이 없으면 7만 달러만 내고, 다른 소득이 있으면 9만 달러로 세금이 올라가는 것일까?
물론 이런 계산 결과는 가정들이 바뀌면 달라진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포인트는 이것이다 - 다른 소득의 유무에 따라서, 똑같은 양도소득도 다른 세금이 나올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사례에서는 세율체계의 누진성이 가장 큰 이유다. 이 정도 소득이면, 뉴욕의 누진세 차이는 거의 없다. 문제는 연방의 누진세 차이다. 여기에 최저한세(양식 6251)와 투자소득세가 늘면서 2만 달러의 세금 차이가 난다. 양도소득은 똑같은데도 말이다.
맨 땅에 돌을 하나 놓는 것과 쌓여진 돌들 위에 돌을 하나 더 얹는 것은 다르다. 똑같은 돌이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30년 전 그 손님이 내 잘못된 상담으로 손해를 보지 않았다면 좋겠다. 양도소득세 상담 전화가 오면, 나는 항상 그 손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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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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