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할 무렵 아빠 찬스를 이용해 친한 친구 몇 명과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 처음으로 두 달의 가까운 일정으로 떠나는 외국 여행이라 출발 전까지 설레이기고 또 떨리기도 했었다. 미술학도로서 세계의 명화를 실제로 만날 기회라 생각하니 최대한 많은 미술관을 방문하고 오리라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떠났다.
이탈리아 로마로 시작된 여행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도시 전체가 역사의 한 장면을 그대로 보존한 듯했다. 더욱이 서울 토박이였던 나에게 도시 중심에 고층 건물 대신 고대 유적지를 연상케 하는 시간이 멈춘 장소에 현대인들이 사는 모습이 생경했다. 대다수가 미술 전공자였던 우리 일행은 바티칸 박물관을 시작으로 유럽 미술관 투어를 시작했다. 물론 저명한 유럽의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지만, 그때 당시 가장 유행했던 구스타브 클림트(Gustav Klimt)의 금빛향연의 그림들이 실제로는 얼마나 더 영롱할까 싶어 큰 기대감을 안고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했다.
Leopold Museum에 도착해서 일층 전시장에 위치한 구스타브 클림트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큰 기대를 가지고 간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일말의 실망감과 허무함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책 안의 도안으로 본 그의 그림이 나에겐 더 큰 감동을 안겨주는 희한한 경험이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는 용어로 설명했는데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으로 인하여 더는 미술 작품 원본의 의미가 사라지며 오히려 복제된 이미지가 오히려 원본보다 더 실제 같은 하이퍼 사실주의를 가리킨다.
학교에서 미학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실제로 경험하고 나니 먼 길을 찾아온 나의 여정의 의미가 희석되는 것만 같았다. 다행히도 2층 전시장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에곤 쉴레(Egon Schiel)라는 모르던 작가를 알게 되었고 그를 통해서 또 다른 그림 풍과 인물을 표현하는 시점을 알게 되어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여행하는 동안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진 않았다. 계획과는 다른 장소에 가기도 했고 때로는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여행은 그렇게 뜻하지 않은 일들의 반복 속에 새로운 발견의 연속, 그 즐거움을 찾아가는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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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BAKI 카운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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