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대의 거울’베스트셀러엔 시대적 욕망과 트렌드 담겨, 50·60년대 전쟁 후유증에 허무·냉소 속 지적·문화적 욕구 폭발
▶ 외환위기 이후엔 무한경쟁 시대로 처세서·자기계발서 인기

시민들이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독서를 즐기고 있다. <이호재기자>

1980~2010년대 대표적 베스트셀러 목록. <그래픽=정가람기자>
2019 트렌드, 최신 유행, 신조어…’ 한 마디로‘인싸(인사이더의 줄임말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뜻하는 신조어)’가 되기 위해 인터넷 검색창을 두드려본 적 있나요? 오프라인 세상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사회의 거울’로 불리는 베스트셀러이다. 잘 팔린 책들을 보면 사람들의 취향과 생활상 그리고 사회 트렌드와 이슈까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거 인싸들은 어떤 책을 읽었을가? 베스트셀러는 언제부터 어떻게 생겨났을가?
◆ ‘충격적이지만 리얼 그 자체’ 1950년대 최초의 베스트셀러 탄생
1954년 1월 1일 한 언론사 신문에 소설이 연재된다.
대학교수 부부의 일탈과 애정행각을 다룬 이 소설은 바로 정비석 작가의 ‘자유부인’. 외도, 바람 등 전후 세태를 잘 묘사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연재물을 묶어 출간된 ‘자유부인상·하권’은 모두 14만부 이상이 팔려 출판 사상 최초로 10만권 판매를 돌파했다.
그런데 당시 보수적이던 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소재의 소설이 뜰 수 있었을가?
전쟁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동시에 폐허가 된 현실이 맞물리며 허영, 퇴폐 풍조가 반영돼 ‘자유부인=리얼리즘 그 자체’로 불리며 불티난 듯 팔렸다.
◆1960년대 전후 사회의 부조리 속 ‘과시적 교양주의’ 열풍
언론매체에서 실제로 베스트셀러 목록을 다루기 시작한 것은 1962년부터이다.
피폐했던 50년대를 벗어나 사회가 안정을 찾아가면서 전후 사회의 부조리를 담은 책과 함께 희망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최인훈 작가의 ‘광장’, 박경리 작가의 ‘김약국의 딸들’, 이윤복 작가의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의 책들이 인기 있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출판업계에선 ‘60년대=전집시대’라고 부른다.
당시 세계문학전집, 단편전집 등 여러 책을 묶어놓은 전집 열풍이 불었다. 중산층을 중심으로 지적·문화적 욕구가 폭발하던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것이다.
거실 혹은 서재 한 편을 책으로 채워 자신을 돋보이려는 ‘과시적 교양주의’가 유행하기도 했다.
◆1970년대 산업화의 빛과 그늘: 감수성 자극 소설·에세이류, 문고본 성행
1970년대에는 급격한 산업화로 물질만능주의 분위기가 커졌다. 빈부격차 역시 극대화돼 소외계층의 모습을 그린 문학 소설과 물질주의를 비판하는 철학 에세이들이 쏟아졌다.
대표적으로 최인호 작가의 ‘별들의 고향’,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 법정 스님의 ‘무소유’ 등의 책들이 베스트셀러로 꼽힌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특히 70년대엔 대학생이 출판업계 주요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이들은 미국의 자유로운 히피문화의 영향을 받아 ‘러브 스토리’, ‘갈매기의 꿈’, 엑소시스트의 번역본인 ‘무당’ 등 미국 대중소설을 많이 읽었다.
또 교양에 목말랐던 학생들을 위한 ‘문고본 베스트셀러’도 각광을 받았다. 문고본이란 가로 110mm, 세로 145mm의 크기의 작은 책으로 휴대가 간편하며 책커버, 삽화, 컬러 이미지 등 디자인을 간소화해 값이 저렴하다는 강점이 있었다. 이 때문에 주로 60년대 전집으로 묶여있던 유명 책들이 문고본으로 발간됐다.
◆ 1980년대 민주화를 꿈꾸며… ‘통속과 풍자 문학’의 시대
1980년대는 경제적으로는 호황을 누렸으나 정치적으로는 권위주의 억압의 시대였다. 이 때문에 사회 부조리와 군사정권을 비판, 풍자한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인신매매 본거지와 집창촌을 소재로 한 소설가 김홍신씨의 ‘인간시장’의 경우 훈민정음 창제 이래 최고의 판매 부수라는 수식어와 함께 출판 역사상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되기도 했다.
또 대학가에선 억압과 저항의 운동이 확산되면서 사회과학서적이 인기를 얻었다. 정반대로 현실도피 흐름도 생기면서 헤르만 헤세의 책들, 크리슈나무르티의 ‘자기로부터의 혁명’ 등 명상서적도 각광을 받았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이해인 시인의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서정윤의 ‘홀로서기’, 도종환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 인기를 끌면서 시집이 전성기를 맞았다.
1988년부터 대형 서점들도 베스트셀러를 집계하기 시작했는데 베스트셀러 종합 20위권 내 시집이 7권 이상 진입할 정도로 시집이 인기를 얻었다.
◆ 1990년대 ‘역사소설 신드롬 그리고 IMF’
민주화 분위기 속에서 서점가에도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골고루 비치됐다.
허준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동의보감’을 비롯해 ‘소설 토정비결’, ‘소설 목민심서’ 등 역사소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차지했다. 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등 소설도 인기를 얻었다.
특히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인문서 최초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뒤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세바퀴 반’ 등 여행·문화·역사 분야 서적이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1997년 IMF 사태로 경제가 어려워지자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빌게이츠@ 생각의 속도’ 등 처세서와 경제 경영서를 찾기 시작했다.
이는 현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답을 책에서 찾고자 한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2000년대 초반 무한 경쟁시대의 멘토, ‘실용 자기계발서’ 등장
외환위기 이후 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가 강화하면서 자기계발서가 다시 주목받았다.
대표적으로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아침형 인간’,‘마시멜로 이야기’, ‘한국의 부자들’, ‘설득의 심리학’, ‘나의 꿈 10억 만들기’ 등이 있다.
특히 독서를 장려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서 자연스럽게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괭이부리말 아이들’, ‘아홉살 인생’ 등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 2010년대 자기계발서의 진화엔 끝이 없다
취업난, 1인가구 증가, N포 세대 등 점점 더 사회가 각박해지면서 자기계발서 시장도 변화의 흐름을 겪게 된다. 특히 사회 전반적으로 소수자와 약자를 괴롭히는 ‘악’과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실망을 주는 ‘현실 정치’에 분노하는 여론이 형성됐다.
2000년대에는 성공, 힐링, 긍정, 재테크 등의 자아성찰적인 성격의 자기계발서가 많았다. 2010년대엔 소통, 정의, 정치 등 사회 구조를 비판하며 위로를 받는 자기 계발서가 인기를 얻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아프니까 청춘이다’, ‘닥치고 정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또 최근엔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주목을 받았다.
지금까지 베스트셀러가 탄생한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베스트셀러의 역사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팔린 책들은 뭘가?
이문열의 ‘삼국지’ 혹은 조앤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 출판업계에 따르면 성경, 수학의 정석, 운전면허문제집이라고 한다. 사실 일반적인 베스트셀러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살짝 엿볼 수 있고 누군가엔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 책들이다.
여러분의 책장엔 얼마나 많은 베스트셀러가 꽂혀있나요? 또 인생 최애 베스트셀러는 어떤 책인가요? 그 책들에는 어떤 고뇌와 재미, 추억들이 담겨 있나요?
<
정가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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