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 엔비디아가 있다면 중국에는 캠브리콘이 있다. 엔비디아 인공지능(AI) 칩 대체재로 부상하며 매출이 뛰었고 주가도 치솟았다. 덕분에 자산이 30조 원 넘는 창업자 천톈스(40)의 특이한 이력에 관심이 모아졌다. 14세에 중국과학기술대(USTC) 소년반에 입학했고 25세에 박사과정을 마친 수재다.
중국에서는 천톈스처럼 이공계 수재들이 창업해 성공한 ‘슈퍼 영리치’가 적지 않다.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도 그중 하나다. 그 역시 중학교에 조기 입학해 중고등학교 과정을 최상위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 입시(가오카오)에서 우촨시 수석을 차지했고 저장대 전자정보공학과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았다. 딥로보틱스(4족 보행 로봇)의 주추궈, 유니트리(휴머노이드 로봇)의 왕싱싱, 브레인코(뇌과학)의 한비청 등도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그 뒤에는 중국의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인재 육성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천인계획’을 통해 해외 인재를 데려오고 자국 내 고급 인재를 키우는 ‘만인계획’을 병행하고 있다. 과학 우수자 선발을 강화한 ‘강기(强基) 전형’을 만들었고 베이징대와 칭화대는 각각 ‘투링반’과 ‘야오반’이라는 최정예 AI 특수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키운 정예 군단이 졸업 후 연구소와 기업, 창업 시장으로 뻗어나가 ‘과학기술 굴기’를 이끌고 있다. 성과가 증명한다.
글로벌 100대 AI 인재를 보면 중국 57명, 미국 20명, 한국은 단 1명이다. 과학기술 인력 풀을 보면 놀랍다. 중국 과학자 엔지니어 숫자는 2000만 명에 달한다. 주요 7개국(G7) 전체 숫자와 맞먹고 우리나라(200만 명)와는 비교조차 어렵다. 유니콘 수로 따지면 미국이 758곳으로 1위, 중국이 343곳으로 2위다.
중국 정부는 10년 전부터 ‘대중창업 만중혁신(大衆創業, 萬衆革新)’을 외치며 첨단기술 분야 창업을 장려해왔다. 여기에다 ‘선배들의 성공 신화’가 창업 열기를 달구며 제2의 천톈스를 꿈꾸게 한다. 이를 두고 ‘완다오차오처’라는 말이 나온다. ‘굽은 길에서 추월한다’는 뜻이다.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직선보다는 코너를 돌 때 추월하기 유리한 것과 비슷한 원리다. 산업 관점에서 보면 ‘패러다임 전환기’다.
AI라는 패러다임 전환에 올라타 성공하려는 중국 수재들이 이공계에 진학하고 창업 시장으로 몰리는 것이다.
한국도 이공계를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대에는 물리학과와 기계공학과가, 1990년대 초에는 컴퓨터공학과와 전자공학과가 인기를 누렸다. 경제와 기술은 서로를 떠받치며 성장했고 대한민국은 연평균 10%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했다. 해외로 뻗어가던 기업들은 S급 인재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한 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며 평생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전국구 수재들은 의대로 몰린다. 이들을 나무랄 일도 아니다. 낮은 처우와 보상 등이 고질적인 이공계 기피로 이어졌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언제 잘릴지 불안에 허덕이고 창업은 개인이 온전히 리스크를 떠안는 구조다. 평생 안정적으로 고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는 국가 공인 자격증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자 11명 중 2명이 의대가 아닌 공대를 선택해 화제를 모았다. 그간 수능 고득점자 열이면 열 의대를 선택했던 터라 신선하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4대 과학기술원의 2026학년도 대학 입시 수시 모집 지원자 수가 근래 5년 중 가장 많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머리 좋은 학생들의 선택인 만큼 득실을 따져봤을 것이다. 안정적인 고소득자의 삶을 살지, 리스크는 있지만 ‘굽은 길’에서 추월할지를 말이다. 먼 훗날 그때의 선택이 옳았다며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가 오기를 기대한다. 혹여 도전 정신 충만한 수재들이 굽은 길을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만드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지금은 천재 한 명이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리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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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정 서울경제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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