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회계기준 도입·적자난 등 보험사 경영환경 캄캄
▶ “민간보험은 일종의 사회안전망…정부 육성책 절실”

보험업계가 정부의 각종 규제 등 경영환경 악화로 이익규모가 급속히 감소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다.
보험사들이 ‘오면초가’에 몰려 있다. 가뜩이나 시장이 포화된 가운데 신회계기준(IFRS17) 도입, 손해율 상승 등 국내 생명보험·손해보험사 가릴 것 없이 경영환경은 암담하다. 그런데도 보험 산업을 육성해야 할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각종 규제혁신에 손을 놓다시피 했다. 해외 보험사들은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를 활용한 새 보험상품 등을 내세워 경쟁하고 있지만 국내는 이제야 간신히 보험 가입자에 대한 헬스케어 기기 제공이 가능해졌고 그나마도 개인정보 관련 규제가 심해 반쪽짜리 상품밖에 못 내놓고 있다. 보험사가 어려운 경영환경을 헤쳐나갈 가능성마저 차단한 셈이다.
“이쯤 되면 사회안전망인 보험 산업을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사회안전망 성격의 보험을 민간 보험사에 맡겨놓았으면 시장경쟁을 통해 보험료를 낮추게 하거나 상품 경쟁을 통해 보험소비자들이 혜택을 보게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중·삼중 규제만 있을 뿐 보험 산업의 혁신을 유도할 정책도, 비전도 없다는 것이다.
한 생보사 관계자는 “민간 보험은 국가에서 전부 감싸줄 수 없는 갑작스러운 질병·사고·재해 등에 따른 피해를 완화해주는 일종의 사회안전망”이라며 “금융당국도 이 같은 방향으로 보험 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청와대 등의 윗선 눈치를 보느라 실제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사례가 최저임금 인상과 대법원의 육체노동 가동연한(정년) 연장이다. 손보사의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 이슈지만 정부가 물가 영향을 우려해 인상 자제를 압박하면서 적자폭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자동차보험의 경우 손해율이 급증하면서 보험료를 올려야 하지만 언감생심이다.
손보사들이 다른 부문의 보험에서 매년 2조원의 흑자를 내고 있으니 자동차보험의 적자를 메우면 되는 게 아니냐는 논리로 보험료 인상을 누르고 있어서다. 최근에는 손해율이 85%까지 급등하면서 손보사 실적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손보 업계의 한 관계자는 “업계가 감당할 수 있는 적정손해율은 78% 정도인데 85%로 치솟았고 연초에는 90%까지 상승했다”며 “이 같은 손해율이 지속되면 연말에는 손보 업계 순이익이 1조원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위기감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금융당국은 청와대를 의식해 보험료 통제에만 신경을 쓰고 손보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 완화에는 귀를 닫고 있다. 핵심규제 몇 개만 풀어도 손보사들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이익을 낼 수 있지만 금융관료들은 만에 하나 잘못됐을 경우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뒷짐만 지고 있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당국에서 보험을 맡게 되면 윗선은 ‘사고나 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를 보낸다”며 “보험은 어렵기 때문에 시장을 육성하려면 수십 년간 전문성을 쌓은 관료가 필요한데 지금의 분위기는 괜히 나섰다가 ‘업계와 유착됐다’는 오해를 받기 쉬워 알고도 움직이지 않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토로했다.
유럽식 회계기준인 IFRS17 도입과 신지급여력비율(K-ics·킥스) 도입 과정에서도 보험 업계는 수년간 시행 시기를 미뤄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지만 당국은 “예정대로”라는 원론적 입장만 외쳐왔다. 그러다 막상 지난해 유럽 국가들이 시행 시기를 당초보다 1년 연기한다고 발표하자 “금융당국이 업계 애로를 지속적으로 전달한 결과가 반영된 것”이라며 자화자찬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보험사들은 킥스 도입에 앞서 지난 2016년부터 최근 3년여간 9조1,425억원의 자본을 확충해왔지만 아직도 많게는 수십조원 이상 추가로 확충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원격의료나 빅데이터 규제 등도 꽁꽁 묶여 있어 보험사들도 연계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외치지만 업계에서는 “희망고문에 불과하다”는 하소연이 나오는 이유다.
보험사들이 사은품으로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를 제공하는 것도 최근에야 겨우 허용됐다. 그렇지만 정작 웨어러블 기기를 통한 고객 건강정보 수집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반쪽짜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진국 보험사들은 가입자에게 제공한 웨어러블 스마트기기를 통해 가입자의 건강정보를 수집하고 보험료 인하나 건강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보험금 지급을 낮추는 등 아이디어 상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남의 일이다. ‘의료행위’ 유권해석을 놓고 부처 간 이견이 나오면서 건강증진형 보험 활성화가 원천봉쇄돼 있는데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목소리를 너무 내지 않는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업계의 숙원사업인 예금보험료 인하도 금융당국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예금보험료는 금융사가 파산할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투자자·가입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내는 비용이다. 저축은행이 파산했을 때 5,000만원 미만의 원금 보장이 가능한 이유다. 보험 업계는 지난해 예금보험공사에 약 1조원의 예금보험료를 납부했다. 은행(0.08%)보다 높은 보험료율(0.15%)이다.
보험을 가입할 때만 ‘고객 대우’해주던 옛 업계 분위기만 떠올리며 보험을 적폐로 보는 우를 범하기보다 규제를 풀고 키워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해 ‘보험 한류’를 이끌도록 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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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희·이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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