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춘기 청소년인 아들이 네 살 즈음에 있었던 일이다. 한창 집안 청소를 하고 있는데 아들이 안방에 펼쳐둔 이불을 몸에 칭칭 감고는 질질 끌면서 부엌까지 와서 급기야 이불에 포도주스를 흘리고 말았다. “앗! 너 이불을 그렇게 질질 끌고 오면 어떡해?” “나 추워서 그러지.” “추워도! 이불에 더러운 먼지가 다 묻잖아! 주스도 흘리고.”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지고 새된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빨면 되잖아.” 으이그,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핀잔이 올라왔으나 녀석의 주눅든 얼굴을 보니 마음이 안되어 얼른 낯빛을 바꾸고, “아! 그렇구나! 빨면 되겠네” 했다. 그 한마디에 표정이 밝아진 아이가 얼른 와서 안기면서 자랑스럽게 말한다. “엄마, 몰랐구나?”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뜸 내 말부터 하지 않고 남의 시각을 먼저 받아주기 시작한 것이. 내 화를 표출하느라 다그쳤다면 그 다음에 이어진 내 말을 들어줬을까? “그렇구나. 그런데 이불 빨래가 쉬운 일은 아니고 포도물은 잘 안 지워지니까 다음에는 조심하면 좋겠어”라는 말. 아들은 자존감에 상처를 입거나 자기 보호를 위한 변명에 급급했으리라. 그러면 내 당부를 순순히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좋은 해법을 찾아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부간의 대화에서도 서로의 말에 반론을 하기 전에 ‘그렇구나’를 하자고 남편에게 제안한 적이 있다. 남편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때도 그렇구나를 해야 돼?”라고 반문했다. ‘그렇구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구나’는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수용하고 존중한다는 표현이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너는) 그렇구나.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하면 대화가 훨씬 부드러워진다. ‘그렇구나’라는 완충 지대가 없으면 대화는 정면 충돌할 수도 있다. 말에도 범퍼가 필요하다. 쉼 없이 바로 받아치는 설전이 탁구 같다면, ‘그렇구나’가 있는 대화는 주고받고 여유가 있는 캐치볼이다. 미국에서는 매직워드(magic word)라고 해서 ‘Thank you(감사합니다)’, ‘Sorry(미안합니다)’, ‘Please(부탁합니다)’를 어릴 때부터 습관화 하도록 가르친다. 거기에 ‘그렇구나’도 더해진다면 더욱 막강한 마법의 어휘 세트가 될 것이다.
<전성하(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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