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나 보다 내 몸이 더 정직하게 이 단어를 알기 때문이다. Hungry(헝그리-배고픔)과 angry(앵그리-화가 남)를 합쳐서 만든 신조어인데 이제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은 물론 다른 어학 사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누가 처음 이 단어를 사용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참으로 단순하면서도 재치있는 단어이다.
어찌 되었든, 행그리는 이유가 있는 단어라고 한다. 저혈당의 상태가 되면 쉽게 피로감이나 짜증이 몰려오고 행그리를 피하고 싶으면 평소에 과자나 음료수, 흰밀가루 음식 등 정제된 탄수화물의 섭취량을 줄이고 건강식 위주로 균형잡힌 음식을 먹어야 된다고 한다. 정제된 탄수화물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혈당이 급격히 올라가듯 떨어질 때도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에 이때 일시적으로 저혈당이 되기 쉽고 이런 경우 행그리가 되기 쉽다고 한다. 사람 나름이겠지만 내 주위에서 보면 이런 이유 때문인지 군것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더 행그리가 될 때가 많은 것 같다.
그리고 행그리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행그리라는 단어를 보면 보릿고개라는 극심한 굶주림의 시대를 직접 몸으로 겪은 어르신들이 떠오른다. 나의 전 세대나 전전 세대인 이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구조적으로 정착된 보릿고개를 연례행사처럼 치른 노인들이다. 이들은 일본의 무자비한 식량 수탈과 6.25 전쟁을 겪으면서 추수 때 걷은 농작물 가운데 온갖 소작료, 빚, 이자, 세금 등 여러가지 비용 등을 다 뗀 후 남은 식량을 가지고 다음 해 초여름 보리 수확 때까지 연명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봄에서 초여름에 이르는 기간동안 풀뿌리나 나무껍질 등 음식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먹으면서 굶주림의 고비를 넘겼기에 이를 보릿고개라고 한다.
이런 보릿고개를 몸으로 직접 겪고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밥그릇에 대한 문제에 아주 민감한 것 같다. 지금은 이런 보릿고개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많은 노인들이 보수적이고 태극기 부대를 자청하는 이유도 이런 굶주림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이런 트라우마적 행그리의 본능을 가짜 뉴스들로 깨우고 부추기며 이용하는 정치 세력들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항상 이들을 이용하기만 하는 정치 세력들을 지지하고 수호한다는 것인데 세상 일은 참으로 요지경이라 할 수 있다.
<이숙진(보험설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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