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알링턴에 있는 국립묘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 전쟁터에서 싸우다 전사한 미국의 무명 용사들이 영면 하는 묘지를 먼저 찾아가 보았다. 1, 2차 대전은 물론 최근의 전쟁까지 어디선가 이름도 찾을 수 없이 죽어간 수 많은 병사들의 비석이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또 6.25 전쟁 당시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이름조차 생소한 한국이라는 나라의 평화를 위해 싸우다 한국 강산 어디에선가 산화했을 미국 유엔군 병사들의 이름 없는 비석들도 있었다.
워싱턴 D.C에 있는 내셔널 몰의 서쪽에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가 있다.
한국 전쟁에서 전사, 부상, 실종, 전쟁 포로로 돌아오지 못한 병사들까지 3만6천여명이 넘는 사람들의 이름이 화강암 벽에 새겨져 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념하는 곳으로 당시 용감했던 군인들의 모습이 스틸 조각상으로 세워져 있다. 그리고 화강암 벽에는 “Freedom is Not Free 평화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는 글귀도 새겨져 있다.
4년전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 4시간거리에 있는 버지니아 노폭에 있는 맥아더 기념관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박물관 초입에 들어서면 맥아더 장군이 부하들과 함께 한국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을 하는 커다란 부조물이 있다. 맥아더 장군이 보트에서 내려 부하들과 함께 바닷물에 옷을 적셔가며 해변을 향해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진을 그대로 재현한 조형물이다. 박물관 2층에는 1945년 히로히토 일왕이 맥아더 장군과 함께 항복 문서에 사인했던 만년필이 전시돼 있고 일왕이 떨리는 목소리로 항복한다는 말이 자동 재생으로 흘러 나왔다. 그곳에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과감히 인천상륙작전을 실행했던 맥아더 장군의 무덤도 있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여러 명의 참전 용사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한국전쟁 당시의 참혹함과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상황을 본 대로 들려주셨는데 그런 나라가 폐허 속에서 오늘날에는 경제 강국으로 우뚝서는 기적을 이뤘다며 굉장히 뿌듯해 하셨다.
하지만 내가 알던 참전용사들 대부분은 고령으로 병들었고 말은 어눌해졌으며 잘 듣지를 못하셨다. 그러나 비록 몸은 쇠약해 졌지만 그분들 대부분이 6.25 전쟁당시 치열했던 전투 상황만큼은 또렷히 기억하고 있었다. 원산, 철원, 압록강, 부산, 대구 이런 지명을 그분들이 말할 때 이분들이 왜 부모 형제들을 떠나 그 먼나라에 가서 목숨을 걸고 싸워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했었다. 또 수많은 전쟁 고아들을 도와줬던 이야기로 부터 적군과 싸우다 죽은 젊은 친구 병사의 이름을 말할때는 고마움을 넘어선 미안함에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직접 겪은 한국 전쟁은 아니지만 교회를 통해서 혹 학교를 통해서 미국 원조를 받은 것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또 전쟁이 끝나고 폐허 속에 가난을 경험하고 자라난 세대이기에 참전 용사 할아버지들의 말에 깊은 공감이 되었다.
그래서 구십이 넘은 노령의 어떤 할아버지에게는 김치와 잡채 불고기를 집에서 만들어다 드렸던 적도 있고 또 미 공군으로 압록강까지 올라가 중공군과 싸웠던 참전 용사 할아버지께는 식사와 가끔 용돈 드리는 것으로 그분들의 희생에 대해 작은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위해 싸워주셔서 감사하다며 정중히 인사도 드리곤 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알던 참전 용사들 할아버지들은 모두 돌아가셔서 뵐 수가 없다.
얼마 전이 6.25다. 지금은 얼굴만 희미하게 떠오르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할아버지들이지만 아내들이 운전하던 차로 지팡이를 짚고 혹은 부축을 받고 천천히 걸어가시던 뒷 모습만큼은 오래도록 쓸쓸하고 감사한 영상으로 마음에 남아있다.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을 맞는 6월에 하나밖에 없는 고귀한 생명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고국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언젠가 알링턴 국립묘지를 다시 방문하여 한국전에서 전사하신 무명용사 묘지를 찾아가 가곡 ‘비목'을 불러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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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현실 락빌 /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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