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불간섭 고립주의를 표방했지만 의회 측 인사들은 참전을 주장하며 갈등을 빚었다. 당시 윌슨 대통령에게는 대국민 홍보가 절실했다. 그러나 의회 기자단은 대통령 회견에 참석할 명단을 자신들이 결정하겠다고 고집했고 이에 반발한 백악관 기자들은 별도의 단체를 결성했다. 미국의 백악관 기자단(WHCA)은 1914년 2월 이렇게 탄생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규정한 미국 수정헌법 1조를 창설 모토로 내세운 WHCA는 백악관을 취재하는 미국 매체 기자들과 해외 언론사 기자들로 구성됐다. WHCA 첫 연례 만찬은 신문사 발행인 출신의 워런 G 하딩 대통령이 취임한 1921년에 열렸다. 하지만 하딩 대통령은 언론 프렌들리를 내세웠음에도 재임 기간 WHCA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고 1924년에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했다.
■정치인과 연예인 등 초호화 인물이 등장하는 WHCA 만찬은 ‘워싱턴의 오스카 무대’로 불릴 정도로 화려하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20~40분가량 진행되는 대통령의 연설이다. 정적이나 상대방 정당의 약점을 촌철살인 유머로 비꼬는 ‘블랙 스피치’가 압권이다. 상대방을 꺾어야 대권을 잡을 수 있는 냉혹한 정치 현실에서 대통령의 만찬 연설은 대통령 개인의 언격(言格)은 물론 미국 정치의 국격(國格)까지 엿볼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전쟁과 전염병·질환 등 피치 못할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 대통령은 WHCA 만찬에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언론은 국민의 적”이라며 반감을 드러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2017~2020년) 때 한 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2기 출범 후 올해 처음으로 참석한 이유에 대해 “출입기자들이 내가 진정으로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기에 초대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자화자찬했다. 26일 WHCA 연례 만찬에서 양극화된 미국 정치의 비뚤어진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분열과 대립의 정치가 잉태한 참담한 자화상이다.
<서정명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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