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정미라씨(38)는 길게 늘어뜨린 생머리와 앳된 얼굴 때문에 나이를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정씨는 내일 모레면 고등학교에 갈 아들을 둔 어엿한 학부형이다. 엔지니어인 남편은 항상 듬직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겠다, 아들 공부 잘 하겠다, 교외의 홈 스위트 홈까지. 그녀는 여자들이 행복을 느낄만한 모든 조건들을 갖추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몇 안 되는 옷을 갖고도 참 맵시 있게 입어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다. 파리지엔느들이 오래된 원피스를 갖고도 코사지와 스카프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는 감각을 타고났다고 부러워 했는데 그녀의 감각 또한 이에 뒤지지 않는다. 그 흔하디 흔한 청 남방을 입을 때면 컨트리 풍의 조끼를 맞춰 입고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변화를 주며, 정장 스타일의 투피스를 입을 때는 부츠를 신어 신선함을 연출하기도 한다.
사치하고 낭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멋’, ‘아름다움’은 늘 그녀의 관심을 끄는 주제. 남들처럼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작은 소망의 씨를 오래 전부터 안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씨앗은 알맞은 토양과 태양 빛으로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몇 해 전, 우연한 기회에 부티크에서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는 디스플레이어로 일을 하게 됐다. 이 경험으로 패션업계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고 옷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플러튼 칼리지의 패션 디자인 과정을 수강하기 시작했다. 공부를 따라가느라 머리가 터질 판인데, 숙제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밀린 숙제와 공부로 주말이 분주하지만 그녀의 듬직한 남편은 청소와 빨래로 아내의 늦은 학구열을 외조 한다.
사 입을 때야 쉽지만 옷을 직접 만드는 과정은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라고. 패턴을 만들고, 그 디자인에 가장 어울리는 옷감을 쇼핑하며, 가위로 헝겊을 자르고 재봉틀로 박는 과정을 일일이 체험하면서 그녀는 옷 하나에 담겨있는 노고를 헤아리게 됐다. 안 그래도 옷을 그다지 자주 사는 형은 아니었지만 패션을 공부하면서부터 전보다 훨씬 옷을 사려는 충동을 자제하게 된다.
그녀는 한 학기에 한 과정씩 과목을 이수하고 있다. 살림을 해야하는 주부라 마음만큼 자주 학교에 가지는 못 하지만, 꼭 단시간에 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한 학기씩 배워 나가는 과정이 행복하다.
숙제만 한다면 주말이 너무 억울하겠지만 바쁜 가운데도 짬을 내 식구들과 함께 외식도 하고 영화도 감상한다. 최근에 테니스 레슨을 시작한 아들 덕에 남편과 함께 테니스를 치는 시간도 즐겁다. 가끔씩 마켓에 들러 제철을 맞은 과일을 사다가 술을 직접 담그는 것도 그녀가 주말을 보내는 기쁨 가운데 하나. 지난봄에는 터질 듯 예쁜 석류를 사다가 빨간 물이 우러나온 석류주를 담아 친구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박지윤 객원기자>jy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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