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구애없이 내면의 자유를 누리는 기품
■작품해설
박목월은 일제말기에서 해방기로 넘어가는 어두운 현대사가 배출한 빼어난 서정시인이다.
해방 후에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이 함께 펴낸 시집 <청록집>은 흔히 암흑기라고 이야기되는 1940년대 전반기가 결코 블랙홀과 같은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청록집>이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무덤의 별이라면 이 가운데서도 박목월의 시편들은 가장 외로우면서도 아름답게 빛나는 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청록파 3인은 모두 일제말기에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지를 통해서 문단에 나온 시인들이다. 문학사적으로나 시편들 하나하나의 문학성 면에서 세 사람이 모두 값어치 높은 시인들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시 전문잡지 <심상>을 창간하여 <문장>의 동양주의, 조선주의를 한국 현대시의 주류로 만들어 나가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빼어난 시편들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나간 박목월의 가치는 특별히 주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그는 간결한 언어, 넓은 여백, 함축적인 리듬의 활용을 통해 형식 미학이 단순히 형태상의 기교가 아니라 정신과 가치의 문제임을 입증해 나간, 정지용 이래 가장 중요한 시인의 한 사람이다.
<청록집>에 실린 ‘임’이라는 시에서 목월은 그 자신을 ‘내ㅅ사 애달픈 꿈꾸는 사람’ ‘내ㅅ사 어리석은 꿈꾸는 사람’이라고 표현했었다. <청록집>에서 목월은 캄캄한 어둠의 힘에 휘감기지 않은 ‘애달프고 어리석은’ 꿈의 세계를 숨 막히도록 절제된 언어와 리듬의 형식미에 실어 보여주었다. 우리는 ‘윤사월’‘삼월’‘청노루’‘나그네’ 같은 시들에서 탁류와 같은 현실의 힘에 위축되지 않은 목월의 정결한 마음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목월의 대표작인 ‘나그네’는 ‘목월에게’라는 부제가 붙여진 조지훈의 ‘완화삼’이라는 시에 대한 화답의 뜻으로 씌어진 것이다.
이 시에는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목월은 ‘나그네’를 쓰면서 바로 이 구절을 부제로 삼음으로써 지훈에 대한 깊은 우정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흔히 행운유수로 표상되는 그 자신의 독특한 삶의 태도를 신비스러운 상징의 차원 위에 구축해 놓고 있다.
우리는 이 시에서 외로움과 도취가 공존하는, 한 개체적 인간의 완미한 내면세계를 목도하게 된다. 이 개체적 인간은 현실의 위압에 사로잡히지 않은 사람이다.
구름 위를 가는 달처럼 표표하게 그 자신의 내면적 자유를 향유하면서 남도 삼백 리를 떠도는 이 사람은 현실적으로 보면 대일협력에 빠지지 않고 역사의 어둠을 슬기롭게 건너간 조지훈과 박목월의 정신의 고도를 가진 사람이고, 인간학적인 면에서 보면 세속잡사에 연루되지 않고 내면적 자유를 향유하면서 ‘자기’라는 이름의 운명을 의연히 감당해 나가는 기품의 소유자다.
방민호(문학평론가ㆍ서울대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