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기록적인 고유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가 제안한 산유국과 원유 수입국 간 회의가 22일로 다가오면서 이 회의에 거는 기대와 결과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산유국이나 수입국이나 모두 `고유가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통된 명제를 갖고 이 회의에 임하지만 그 해법과 전망은 각국의 입장과 고유가를 보는 시각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사우디 원유증산 발표할까 = 이 회의의 관심의 초점은 원유 최대 수출국인 사우디가 원유 증산을 발표할 지 여부다.
최대 산유국으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발언권이 가장 강한 사우디 정부가 증산을 공식화한다면 다른 산유국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가 산유량을 늘릴 것이라는 분위기는 일단 충분히 무르익었다.
지난 15일 압둘라 사우디 국왕을 만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사우디도 유가가 비정상적으로 높다는 것을 인정한다며 다음달 20만 배럴을 증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19일엔 런던 주재 사우디 대사관의 웹사이트에 하루 20만 배럴 증산을 기정사실화하는 발표를 했다가 바로 글을 내리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사우디가 20만 배럴을 증산한다고 해서 유가가 대폭 떨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국제 사회의 고유가 문제 해결에 동참한다는 의지를 보임으로써 유가가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효과는 낼 수 있을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사우디는 미국의 증산 요구에도 부응하는 셈이어서 최근 고유가로 불편해진 대미관계도 개선할 수 있다.
미국은 조지 부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우디에 증산 압박을 가했지만 사우디는 시장이 요구하면…이라며 원칙론만 고수해 왔었다.
사우디는 또 고유가로 세계의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기만 한다는 부정적인 대외이미지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원유 소비국은 사우디의 증산을 구실로 다른 산유국에 증산을 하라는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수석 경제분석가 파티 비롤은 18일 얼마나 증산할 지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증산 결정은 모두가 기다리는 소식이라며 고유가를 진정하려면 다다익선이라고 말했다.
◇OPEC 회원국 증산 반대 기류 = 사우디의 이런 움직임에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미 OPEC 이란 대표인 모하마드-알리 하티비는 17일 어떤 증산도 OPEC 각료회의에서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사우디아라비아가 일방적으로 원유 증산을 결정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조치일 것이라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란을 주축으로 한 리비아, 베네수엘라 등 반미 산유국들은 최근 고유가가 공급 부족 때문이 아니라 국제 원유 거래의 표준 통화인 달러화가 약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고수해 왔다.
사우디 역시 공급량엔 문제가 없다며 국제 투기자본을 고유가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입장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고유가로 쌓인 걸프지역 산유국의 자금을 관리하는 펀드가 투자처를 찾지 못해 다시 원유 시장으로 공급되는 악순환이 고유가를 부추긴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카타르 에너지 장관 모하메드 살레 알-사바는 18일 dpa 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시장의 공급량이 부족하다고 보지 않는다며 공급이 부족하다면 수입국 국민이 주유소 밖에서 줄을 길게 서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또 수입국의 요구에 따라 산유량을 무턱대고 증가할 경우 수입국의 정유량이 이를 소화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는 게 산유국의 주장이다. 수요가 보장되지 않는 한 `남의 말만 듣고’ 공급을 늘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우디의 경제학자 알리 알-다카크는 고유가는 맹렬한 투기자본과 수입국의 부족한 정유시설 때문이라며 수입국의 증산 요구는 정치적 동기에 기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고유가로 인한 호황으로 국제 사회에서 입김이 세진 산유국이 쉽게 고유가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사우디, 왜 회담 소집했나 = 이에 대해선 `면피용’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사우디의 한 고위 관리는 17일 로이터 통신과 회견에서 사우디는 고유가 문제를 가장 중요한 쪽, 즉 소비자에게 설명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회의를 소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으로 OPEC 산유국은 소비국에 `우리는 고유가를 원치 않는다’고 말할 기회를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산유국에 집중된 고유가에 대한 일방적 책임론을 변호할 수 있는 국제적인 장을 마련하고 고유가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 사우디가 이번 회의를 소집한 주된 이유라는 해석이다.
쿠웨이트 원유시장 분석가 카멜 알-하라미는 지난 10일 AFP 통신과 회견에서 이번 회의는 단순히 산유국을 비난하는 대신 원유가 급등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논의하자는 것이라며 양측 모두 이 위기를 푸는 역할이 있다고 말했다.
이 회의에 맞춰 사우디가 증산 발표를 할 것이라는 예측도 이런 맥락이다.
미국 원유시장 분석가인 그렉 프리디는 사우디가 제의하는 증산량이 실제로 매우 작을 것이 분명하다며 이는 그저 사우디의 `자기 홍보용’이다고 평가했다.
정치적 고려도 엿보인다.
급성장하는 중국, 인도 시장이 원유의 주요 판매처로 떠오르면서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미국, 유럽 등 서방에 좀 더 당당해졌다.
원유 수요처가 다변화하면서 서방에 의존도가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산유국이 중동에 집중 분포된 만큼 안보 문제를 둘러싼 미국과 정치적 연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중동 산유국의 입장이다.
선거를 거치지 않고 가문 간 힘겨루기 끝에 절대 권력을 누리는 현 사우디 왕조는 정권 안정을 위해선 미국의 지지와 서방과 원활한 외교관계가 필요하다.
이번 회의를 자신에 집중된 증산 압박을 분산, 석유와 정치 사이의 줄에서 잠시 잃었던 균형을 잡는 기회로 삼겠다는 사우디의 계산이 깔려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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