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이 학교 마칠 시각을 기다리며 차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날 알아보고 다가온 친구 엄마가 대뜸 ‘무슨 책 읽으세요?’하면서 눈길을 준다. ‘아, 별 거 아니에요. 그냥.’ 나는 황급히 책을 가방에 쑤셔 넣고는 차 밖으로 나왔다. 평소라면 어, 이거요? 무슨무슨 책인데요 읽어보세요 재밌어요. 이랬을 텐데 말이다.
내가 후딱 덮은 그 책의 제목은 이 시대를 사는 부부들을 위한 리얼 스토리, 그런 거였다. 차암,,, 뭐 이런 걸 책으로 다 만들고 그렇지? 종이가 아깝다, 아까워. 우리집 사는 이야기 모아도 이거보단 낫겠네 하며, 코웃음치기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이 흘겨보기 딱 좋은 책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비소설류, 그렇니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처세술이나 인생 지침서 등을 정말 싫어한다. 싫어하면 안 읽으면 그만인 것을 나아가 그런 책 읽는 사람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런 오만불손 아줌마가 도서관에서 이런 책을 슬며시 빌려온 이유는…?
그렇니까 지난 주에 동네 아줌마랑 차 마시며 이야기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어? 어! 어.”
마치 중국어 성조 연습을 하듯 대충 한 마디씩 대답하고 전화를 끊으니 “남편이에요? 근데 왜 그렇게 화난 사람처럼 전화를 받아요?” 하고 묻는다.
“아~ 원래 그래요.” 난 무심히 대답했다. 그게 남보기 부끄러운 일이란 걸 전혀 알지 못하면서.
늦게 퇴근한 남편이 “저녁 먹었어?”하고 물으면 “응, 애들이랑 먼저 먹었어. 당신은?” 이라고 부드럽게 되묻는 대신 “그럼, 지금이 몇 신데 여태 안 먹었게?” 하고 받아친다. 평소에도 직설적이고 냉정하다는 얘길 심심챦게 들어왔던 터라 그것이 나의 흠이란 생각은 커녕 내 성격이자 바꿀 수 었는 성향, 자질이라고까지 믿어 의심치 않고 살아왔으니 말이다.
차 마시던 아줌마가 이어 말하길, 그래요, 나도 그런 편인데, 그게 습관이 되버리니까 안되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엔 좀 이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한다.
솔직히 여기 미국 땅에 뚝 떨어져 살다보니 종종 아이들이 한국 문화를 모른다고, 명절도 풍습도 친척도 웃어른도 잘 모른다고, 걱정을 한다. 하지만 정작 그 걱정을 쏟아 부어야 할 대상은 따로 있었던 셈. 언행을 조심해야 할 웃어른이 없다고 되는대로 말하고 편한대로 살고 있는게 바로 나 자신이니 말이다.
신혼의 닭살 행각까진 아니더라도 보이지 않게 흐르는 둘 사이의 따뜻함이 느껴지는 부부들과 마주할 때가 있다. 부럽다. 그들에게는 항상 내게 없는 것이 분명히 있었다. 예쁜 말, 바로 그거다. 부럽다고 느끼는 순간 내 안의 잘못을 인식해야 하고 그걸 깨달았다면 당연히 노력을 해야 한다. 그렇니 나는 부럽다고 말할 자격도 없나보다.
이건 여담인데, 왜 한국 사람은 전화를 끊을 때 서로 인사를 안 하냐며 궁금해 했다는 이야길 들은 적이 있다. 미국 사람들은 “bye~!”하면서 마침표를 찍는데 우린 대충 할 얘기 다 하면 ‘네, 그래요, 들어가세요’ 이런 말로 마무리를 한다. (어딜 들어가라는 건지, 하여간 언제부터 들어가세요가 됐는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안녕히계세요, 안녕, 이렇면 약간 이상하다.
어쨌든! 오늘 당장 “Hi, Darling! Bye Honey!” 라고 애교스럽게 속삭일 순 없겠지만, 새 해엔 딱 한 가지만 고쳐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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