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세 생일 맞은 ‘3일의 약속’ 정동규 심장전문의
▶ 아내 덕분에 건강, 100세까지 왕진 다닐터 치매 오거나 운전 못하게 될때가 은퇴시기
오는 6일 80세 생일을 맞는‘3일의 약속’ 저자 정동규 의학박사가 자신의 인생역정을 들려주고 있다. <장지훈 기자>
11년 전 KBS 월화 드라마(50부작)로 제작돼 한국인들의 가슴을 적셨던‘3일의 약속’ 저자 정동규 박사가 오는 6일 80세 생일을 맞이한다. 그냥 조용히 교회에서 생일을 맞았던 예년과 달리 80세 생일상에는 정 박사가 가장 좋아하는 갈비와 물냉면이 차려질 예정이다. 함경북도 주을 대향촌에서 태어난 그에게 가든그로브 모란각의 물냉면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자 어머니 생전에 지키지 못했던 회한의 음식이다. 그래도‘3일이면 돌아오겠다’는 약속만 남긴 채 고향을 등져야했던 18세의 혈혈단신은 더 이상 아니다. 아내와 두 아들, 며느리, 손자손녀까지 둔 9명 대가족의 가장이 되었다. 수도의대(현 고려대)를 수석 졸업하고 1962년 도미,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의과대학 심장내과 전문의 수련을 거쳐 40년을 한결같이 그 자리에서 심장 전문의로 환자들을 돌보고 있는 정동규 박사를 롱비치 병원에서 만났다.
“여든이 되니 은퇴계획을 많이 물어오네요. 두 가지 경우에 은퇴할 계획입니다. 사람을 못 알아보는 치매 증상이 왔을 때, 운전을 못하게 될 때, 그 날이 은퇴하는 날이죠. 근데 까다로운 아내 덕분에 음식 조절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니 그 날이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환자들에게 100세까지 왕진할 작정이니 그 땐 택시 값이나 내라고 하죠”
정 박사는 1주 월, 화, 목 3일 오전 8시부터 11시30분까지 롱비치 병원에서 심장내과 및 일반내과 전문의로 진료를 한다. 1주 3회 골프를 다니고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24피트니스에서 3시간씩 운동을 한다. 자전거 타기로 심장을 단련시키고 트레이너와 2시간 유산소 운동을 한다. ‘큰 의사가 되라’는 어머니의 약속을 오랫동안 지키고 싶어서다. 이유인 즉 1945년 8월 맹장염 수술을 받았는데 해방이 되는 바람에 병원에 있던 일본인 의사와 간호사들이 모두 자취를 감추어버렸고 수술 후 상처부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그에게 어머니가 “커서 큰 의사가 되어라”는 소망을 표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 박사는 청진 의학전문학교에 진학했고 우여곡절을 거쳐 심장 전문의가 되었다. 의사 중에서도 큰 의사는 제2의 영혼, 심장을 지키는 의사라고 믿었던 것이다.
“언젠가 가든그로브 북경원에서 아내와 함께 자장면을 먹고 나오는데 슬그머니 지켜보던 식당 주인이 언제 사왔는지 엿을 손에 쥐어줍디다. 제23연대 수색중대 충원 병력이 되고 경주에서 구룡포로 걸어오며 엿이 먹고 싶어 입은 외투와 엿가락 두 개를 바꿔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는 책 내용을 기억해낸 식당 주인이 선물로 준 것이었지요.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정 박사는 환자들에겐 심장 전문의이지만 일반인에겐 ‘3일의 약속’ 저자로 통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한국전 참전용사. 3일의 약속을 남기고 1.4후퇴해 함께 육군에 입대했던 같은 고향 출신 참전용사 156명 중 살아 남았던 26명 중의 한 사람. 군번 0722012 정동규.
죽음의 고비마다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정 박사는 1956년 제대명령을 받고 자유 세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그를 반겨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25세 청년은 다시 군으로 되돌아가 3년을 더 복무했다. 1962년 미국의학협회에서 발행한 주간지에 나온 ‘세인트루이스 미조리 뱁티스트 병원 인턴 구함’에 지원서를 냈고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된다는 말이 있죠. 내 경우는 가는 곳마다 구세주가 나타났죠. 제대하고 만난 박 원장(현 한나라당 박진 의원 부친), 미국 유학을 오는 도중 기내에서 만난 손기정 마라톤 선수,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 마중을 나왔던 오세욱씨 등이 그렇죠”
지난 1989년 6월 24일자 본보에 ‘3일의 약속’ 저자 정동규 박사 출판기념회 ‘통한의 33년, 모정의 비방록’ 이야기가 실렸다. 3일 후에 돌아오겠다는 아들의 약속은 33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실현될 수 있었다. 그것도 아들을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에 이뤄진 귀향. 1983년 캐나다 친북계열 신문의 기자 주선으로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어머니는 이미 4년 전에 돌아가셨고 고향 뒷산의 묘소에서 비석을 붙잡고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무서웠습니다 용감하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그 피맺힌 삶의 기록이 바로 ‘3일의 약속’이다. 본보에 소개된 이후 정 박사의 자전적 에세이 ‘3일의 약속’은 인기 탤런트 정욱씨가 주연을 맡은 KBS드라마로 제작돼 큰 인기를 누렸다. 영문판 ‘The Three Day Promise’가 미국인들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인생상담 칼럼 ‘디어 애비’(Dear Abby)를 통해 1,200개의 일간지에 소개되면서 일으켰던 엄청난 반향이 한민족의 가슴에도 휘몰아쳤다. 그리고 지난해 1월 한국전쟁 60주년 회고 수정증보판으로 ‘3일의 약속’이 재발행됐다.
전 주한미군 제8군 사령관 밴플리트 예비역 대장은 추천하는 글에서 ‘한국인들이야말로 필승의 의지가 몸에 배어 있음을 알았다’고 서술하고 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은 정 박사는 그가 최고의 선물이라고 소개한 형 김동길 박사의 편지 글귀처럼 ‘대한민국의 오늘을 있게 한 6.25세대들이 점점 줄어들고, 또 이들의 발언이 점점 빛을 잃어가는 슬픈 현실’ 속에서 한국전을 결코 잊혀질 수 없는 역사의 증인으로 남을 것이다.
<하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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