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년기획/ 사양업종을 지키는 한인들
▶ <2>희망을 꿈꾸는 추억의 만화방
우리 만화방의 윤영수(오른쪽) 사장이 한인 손님에게 신간 만화와 소설들을 소개하고 있다.
퀸즈 플러싱 한인상권을 대표하는 유니온 상가. 상가 전면을 빽빽이 메우고 있는 한국어 간판 사이로 정감어린 상호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우리 만화방’. 이제는 한국에서조차 찾아보기가 힘든 골동품처럼 돼 버린 바로 만화방 간판이다.
상가 중간 3층 만화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중년 남성이 머리가 희끗한 백발의 노신사에게 새로 나온 신간 만화와 판타지 소설에 대해 한창 설명하고 있었다.
“최근에 가장 뜨는 신간입니다. 선생님 배꼽 잡을 겁니다.”
한 때 퀸즈 플러싱의 한인 젊은이들 사이에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 인사로 통했다던 윤영수(55) 사장. 하지만 요즘은 40~50대 중년층이나 60대 어르신들 사이에 더 인기가 높아진 것 같다며 겸연쩍어 했다. 윤 사장이 만화방을 운영하기 시작한 때는 지금으로부터 24년 전인 1989년. 원래는 자신이 즐겨 찾던 단골 만화방이었지만, 어느 날 만화방 주인이 “가게를 운영해보지 않겠냐?”며 제의해와 고민 끝에 야채가게를 정리하고 만화방을 덜컥 인수해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만화방에서 이현세, 허영만, 고행석, 박봉성 등의 유명 만화 작가들이 그린 만화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읽곤 했지요. 이곳 한인 1.5세, 2세들에게도 상상의 나래를 맘껏 펼칠 수 있는 그들만의 장소를 만들어주고 싶었습니다."
한때 ‘우리 만화방’이 발 디딜 틈새 없이 손님들로 가득 차던 시절도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만화를 보는 학생들과 소설을 읽는 어른들이 이곳에서 진을 쳤지요. 복도 건너편 사무실에까지 만화방을 확장해 좌석만 30개가 넘었어요. 당시 이곳 책장에는 만화책만 4~5만권에 무협지 및 소설책도 2~3만권이 가득히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만화방을 찾던 손님들의 발길이 하나 둘씩 끊어지기 시작했다. 대부분 PC방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그나마 옛날 향수를 찾던 성인층 단골 고객들 덕분에 한동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2009년 ‘우리 만화방’은 결국 20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당시 경영악화와 개인적인 사정이 겹쳐 만화방 운영을 포기했던 윤 사장은 집에서 쉬었던 3년간 만화방에 대한 향수만 키웠다.
"매일 아침 만화방 오픈할 때 풍겨오던 책 냄새들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이제는 인생의 동반자들이 돼버린 20년 지기 단골들의 전화도 끊이질 않았고요" 그러던 중 2012년 겨울 마침 예전 만화방 자리가 비었다는 건물주의 전화를 받은 윤 사장은 간판을 다시 내걸고 책들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만화방이 다시 문을 열었다는 소식은 몇몇 단골들에게도 전해졌다. 방과 후 책가방을 짊어지고 뛰어 들어오는 어린 손님들은 이젠 사라졌지만 어느덧 중년과 노년층이 돼버린 옛 손님들의 발길이 하나씩 이어지고 있다. "요즘에는 만화도 웹툰이 뜬다는 데 돈을 생각했다면 다시 손을 대지 않았을 거에요. 그저 낭만이 서린 이 추억의 공간을 새로운 상상과 희망을 꿈꾸는 쉼터로 만들어가고 싶습니다."며 비어있던 책장을 하나씩 채워가던 윤 사장의 입가에는 이미 행복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천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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