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한국일보에서 USC 근방에 있는 대한인 동지회 건물이 개인 건축업자에게 넘어가 기숙사형 아파트로 바뀐다는 기사를 보았다. 독립운동의 산실로 한인이민사에서 의미가 큰 동지회관이 사라졌다니 대단히 섭섭하다.
50여년 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미국 땅에 대망의 꿈을 안고 유학 와서 첫번째로 자리 잡은 곳이 바로 동지회관이었다. 건물 위 아래층에 여러 개의 방이 있고 나머지 공간은 큰 홀로 되어있어 기념식이나 모임 장소로 쓰였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뜻 깊은 공간이었는데 이제는 그 자취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살던 아래층 작은 방은 월세가 25달러였다. 한국 유학생 7명이 살았고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서 일하셨다는 칠순 노인이 매니저로 있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 동지회 사무실이 있어서 가끔씩 회의하는 모습을 보곤 했다.
모두들 미국생활에 적응하려고 너무 바쁘게 지내느라 주중엔 함께 식사를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토요일 아침엔 3-4명이 부엌식탁에서 아침을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매니저 노인이 버몬트가에 있는 트리프트 스토어(현 랄프스)에 가서 도넛을 사다가 나눠주며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고생하던 얘기를 하시곤 했다.
이층 제일 좋은 방엔 미스터 홍이라는 분이 살았는데 뱅크 오브 아메리카에서 일하는 이민교포로 일하는 시간이 맞지 않아 우리와 거의 만날 수가 없었다. 모두 그를 ‘백만장자’라고 부르며 부러워했다. 직장이 은행이라 좋은 차도 타고 열쇠도 많이 차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미스터 홍 건너편 방엔 최 중령이 살았는데 모국에 가족을 두고 혼자 와서 기반이 잡히는 대로 가족을 데려올 생각이라고 했다. 그 옆방에는 육군 대위로 제대했다는 미스터 유라는 분이 살면서 낮에는 전자회사에서 일하고 저녁엔 영어회화를 배우는 학교에 다녔다. 그 외 몇 분이 같은 건물에 살았지만 서로 친분을 나눌 기회는 없었다.
나는 컬럼비아 레코드사(CBS 소속)에서 시간당 2달러17센트를 받고 일했다. 그 당시 임금 수준으로는 꽤 괜찮은 보수였다. 방세와 카풀(차가 없었으니까) 값을 일주일에 2달러 내고 생필품을 사고도 주급으로 한 달을 충분히 살 수 있어서 나머지 돈을 저축할 수 있었다. 7월에 취직된 후 회사가 크리스마스 준비로 레코드판을 많이 생산하느라 토요일에도 오버타임 임금을 받으며 일해서 수입이 꽤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일년 동안 열심히 저축해 학교로 돌아가겠다던 처음 계획이 거의 이루어져 가고 있었다.
저녁에는 LACC에 가서 영어 101 코스를 정식으로 수료해 학점도 받았다. 그 당시엔 시티 칼리지 등록금이 무료였다. 일요일엔 동지회 안에 있는 교회에 가끔씩 참석해 40-50명 정도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그리고 자동차가 있는 친구 따라 가끔씩 바닷가로 낚시도 갔었는데 주로 고등어가 많이 잡히던 기억이 난다.
나는 동지회를 1965년 8월에 떠났다. 이후 공부를 끝내고 연방농무부에 경제학자로 취직해 30년간 일했다. 그리고는 지난 2004년 은퇴한 후 워싱턴 D.C.를 떠나 40년 만에 다시 남가주로 돌아 왔다. 오렌지카운티에 살면서 장모님이 사시는 노인아파트를 자주 방문했는데 그 근처에 동지회 건물이 있어서 꼭 둘러보곤 했다. 50여년 전 내가 살던 방을 한번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끝내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이제 건물 자체가 사라졌으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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