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유닛’ 랜디 잔슨(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은 왜 포스트시즌만 되면 ‘스몰유닛’이 되는가. 왼손 괴물투수 잔슨이 10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패전 멍에를 뒤집어씀으로써 이같은 의문이 다시금 고개를 쳐들고 있다. 그가 정규시즌에선 시쳇말로 ‘데리고 논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상대 타자들을 압도하면서도 정작 PO마운드에서 거둔 성적은, 적어도 그의 이름값에 비춰보면, 보잘 것 없기 때문이다.
6피트10인치의 장신에다 왼손잡이란 프리미엄. 서른여덟살 나이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시속 100마일에 육박하는 강속구, 게다가 안쪽 바깥쪽 위 아래 어디든 거의 마음 먹은대로 꽂아넣는 코너웍….
좋은 공을 갖고 있으면 나쁜 공도 무기가 된다. 영락없이 잔슨이 그랬다. ‘잔슨 하면 연상되는 그 공’만을 잔뜩 벼르고 있는 타자들에게 ‘얼추 비슷하지만 영 다른 공’을 섞어가며 톡톡히 재미를 봤다.
88년 메이저리그 데뷔이래 정규시즌 통산 성적은 200승101패(방어율 3.13). 완투게임만 79차례요 그중 30번은 완봉승이다. 올해 성적 역시 눈부시다. 다승 2위 방어율 1위(21승6패, 방어율 2.49). 한게임 최다 탈삼진(20개) 타이기록을 수립한 그는 이번 시즌 372명을 삼진아웃으로 돌려보내며 놀란 라이언의 시즌 탈삼진 기록을 갈아치울 문턱까지 갔다.
그러나 10일 카디널스전 패배로 그는 포스트시즌 7연패(2승)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이던 95년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거둔 2승 이후 PO 마운드에 올랐다 하면 몽땅 패전이다. 바로 그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리그챔피언십에서 1패를 당하더니 97년 2패, 휴스턴 애스트로스 유니폼을 입은 98년 2패에 이어 D백스 식구가 된 99년에도 1패를 당했다.
PO 통산 방어율(3.67)만 보면 잔슨이 PO마운드에서 유난히 죽을 쒔달 수도 없다. 승운이 따르지 않은 게 크다. 다만 정규시즌에 비해 득점생산이 적은 포스트시즌에 방어율이 더 높다는 건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게다가 잔슨과 맞대결하는 상대투수들이 그야말로 괴력피칭을 보인 탓도 컸다. 잔슨의 PO7패 내역을 상대 선발투수와 비교하면 성적표가 맞바뀐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잔슨은 7게임 방어율이 4.26인 반면 상대 선발투수들은 1.71. 팀동료들의 득점지원은 잔슨이 1.42에 그쳤고 상대투수들은 4.56점이다. LA 다저스의 케빈 브라운도 샌디에고 파드레스 소속이던 98년 잔슨과의 PO 맞대결 승리로 ‘진정한 전국구 수퍼스타’로 각인되고 그 여세를 몰아 ML 1호 억대투수가 될 수 있었다. 잔슨이 거듭되는 패전고리를 끊고 빅유닛의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올해 PO잔치를 보는 또다른 별미는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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