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늦가을 무더웠던 한여름 도심의 열기 때문에 풀죽었던 가로수들이 고운 색깔 한번 못 입고 봉두난발(逢頭亂髮)한 채 누렇게 퇴색된 잎들만 축축히 내리는 가을비에 맥없이 떨고 있는 슬픈 모습이 도심의 많은 스시바가 어느 때보다 힘든 여름을 보낸 모습과 비슷해 안쓰럽기만 하다.
스시를 즐겨 찾는 엘리트들이 늘 붐비는 정치 일 번가에 자리하고도 스시밥 짖기 삼년도 못 채운 자격미달에, 스시문화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도 모르는 어눌한 자에게 바를 맡긴 주인들의 구태의연한 비즈니스 마인드는 이미 이런 슬픔을 예견 했을지도 모르겠다.
온갖 음식문화가 도처에 자리 잡은 DC에서 유독 자기 집만이 이들의 입맛에 맞는 퓨전스시를 팔고 있다고 자만하지만 오랜 역사의 스시가 갖고 있는 변치 않는 맛이나 아름다운 자태는 찾아볼 수가 없고 칼을 쓰는 사내에게서 우러나오는 신뢰감도 배어있지 않은 솜씨를 가지고 스시에 일가견이 있는 이들을 상대하기는 너무 경쟁력이 부족해 보이는 게 참으로 안쓰러울 따름이다.
올 봄 DC 듀폰 서클 근처의 한 유명 스시집은 전역에 넘쳐나는 스시집과의 경쟁에서 벗어나 정통일식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딴 집보다 유독 길었던 스시바를 헐어버리고 잔잔한 사미 생음악이 흐르는 테이블 위주의 고급요리를 가지고 스시의 격(格)을 찾는 고급손님을 상대로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이제 치킨데리야끼니, 캘리포니아롤이니 등의 스시는 더 이상 이집의 메뉴가 아닌 것이다.
우리도 이제 한번쯤 주위를 둘러보고 스시의 흐름 추이도 한번 생각해 보자. 이 계절, 최고의 생선은 뭐니뭐니해도 일본 미야기현의 시오가마(鹽釜)항으로 올라오는 혼(本)마구로다. 붉은살 전체에 눈꽃처럼 퍼져있는 하얀 지방의 살이 입에 넣으면 눈처럼 사르르 녹는데 이 참치와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일본제일의 쌀로 빚는 스시를 먹기 위해 일 년을 절약하며 산다는 한 노신사는 이 스시를 먹을 때 무한한 생의 기쁨을 느낀단다. 광어 또한 제철인데 한국의 제주도 한 양식장에서는 광어가 바하와 모차르트를 들으며 인삼이 농축된 사료를 먹고 큰단다.
오래전 일본항공(JAL)이 DC에 호텔을 개장했을 때 스시쉐프로 내정 됐던 쓰노다(角田)씨는 빠른 칼솜씨와 2타법 니기리스시를 자랑했는데 이철이면 광어뼈와 껍질에서 나오는 엑기스로 오랜지향도 그윽한 젤리를 만들어 스시바 손님을 즐겁게 해주곤 했었다. 스시는 다도(茶道)처럼, 글이나 말로 전하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전하는 거라며 자기 기술을 훔칠 테면 얼마든지 훔치라고 언제나 당당했었다.
이제 곧 도심의 스시바에게 연중 제일 바쁜 연말이 닥친다. 지금은 스시재료가 가장 풍부할 때다. 넉넉하게 접시에 담아내며 손님에게 후한 인상이라도 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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