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가 치매에 걸린 먼 친척분과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예전에 뵌 적이 있기에 당당했던 그분의 젊은 시절의 모습만 상상하며 기다렸는데, 다소 쌀쌀한 날 임에도 불구하고 반바지 차림에 희끗희끗 해진 머리 그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들어오시는 모습에서 예전의 그 당당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노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그 누구도 비켜갈 수 없음을 느끼게 했다.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친척 분은 조실부모하고 그 동안 뉴저지에서 몇 십 년간 독신으로 살아오셨기에 챙겨야 할 자식도 없고, 가슴으로 기댈 수 있는 부모님마저 곁에 계시지 않기에 오랜 세월 홀로 지내며 본인이 치매에 걸린 사실도 모른 채 외롭게 살아오신 것 같다 한다.
가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특별한 날에만 만났기에 잘 지내시고 계시겠지 마음 속으로 안부를 전하다 몇 달 전 갑자기 생각이 나 연락도 안하고 무작정 찾았는데 눈앞의 광경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처참했다 한다. 침대 위엔 옷이란 옷은 다 널브러져 있고 냉장고 속엔 썩은 음식물로 가득 차 있고 그사이 앙상하게 말라버린 모습을 보며 한동안 찾아뵙지 못함을 후회하고, 죄송한 마음 금할 길이 없었다 한다.
친구는 죄스러움에 그날로 버지니아 집으로 모시고 와 병원 진찰을 해보니 ‘최근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어릴 적 기억만 또렷한 치매’ 라고…본인이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살아오신 그분의 삶이 너무 안쓰러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그나마 요즘엔 친구의 지극정성으로 살도 많이 오르고, 하루 종일 친구 집의 강아지를 업고, 안으며 즐겁게 보내시지만 덕분에 한창 뛰어 놀아야 할 어린 강아지는 그분께 “기쁨을 드리는 ‘일등공신’ 인 반면 희생양(?) 같다” 고 말하는 친구를 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가슴앓이를 하며 지낼까 하는 상심이 밀려왔다.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암보다 더 무섭다는 병 치매. 주로 노인성 질환으로 알던 치매가 요즘 들어 한창 일할 나이인 30~40대에도 잦은 술자리와 스트레스 때문에 진행속도가 빠른 ‘알코올성 치매’ 환자가 늘고 있다 한다.
앞으로의 전망이 2050년엔 세계 치매 환자가 1억 명을 넘을 것이고 그 중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는 국가가 될 것이라는 기사를 읽고 주위에 홀로 사시는 분들께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며 과연 무소식이 희소식일까 반문해 본다.
오늘 그분께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그저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해 드리는 일 외에 그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해 죄송스런 마음과 “슬픈 일인데 매일이 새 날” 이라며 긍정적으로 말하는 친구를 보며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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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희 포토맥 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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