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서 한인 재정보험인 1호라 할 수 있는 임세창(72·임세창 종합보험대표·사진)씨는 33년간 외길인생을 걸어온 정통 보험인이다.
동국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후 서울 시청 재무국에서 근무하다 캐나다를 거쳐 1965년 도미했다.캐나다 세인트 프랜시스 대학에서 1년간 사회지도자 과정을 수료 후 미국으로 와 현재는 세인트 존스 경영대학원 과정에 편입된 맨하탄의 보험전문대(칼리지 오브 인슈런스)에 입학, 보험을 공부했다.
보험전문대 졸업 후 미국 로얄 보험사에 들어갔는데 한인담당 직원이 없는 상황에서 보험에 대한 상식이 없어 애로사항을 겪는 한인들의 문의전화가 쇄도하자, 전화만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74년 퀸즈 리지우드 패밀리하우스 지하에 임세창 종합보험을 차렸다.
손재보험으로 출발, 76년부터 생명보험도 함께 취급하고 있는 임세창 종합보험은 이후 6애비뉴 830번지에 위치한 지금의 사무실로 이전했다.
상해 보험에 가입한 한인들이 거의 없었던 70년대 초 당시 한인들이 보험 상식이 없어, 가게를 차린 후 소송으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화재, 상해, 주택, 자동차, 해상 보험 등 생명보험을 제외한 손해보험 분야에 전문 한인 보험인이 거의 없던 때라 그만큼 임씨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뉴욕 올드타이머들이라면 한번쯤 그를 거쳐 갔을 만큼 많은 한인들이 그의 고객이었다.
70~80년대 뉴욕시에서는 치안문제로 도난사고가 빈발, 업주들이 골머리를 썩었다. 운동화 가게를 비롯 많은 한인 업소들이 자고 일어나면 털리던 시절, 임씨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소액으로 가입할 수 있는 연방도난보험 가입을 유도, 많은 업소들이 도난 피해 보상을 받게 한 공로로 카치 뉴욕시장으로부터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한인 보험인들이 늘며 1995년 대뉴욕지구한인보험재정협회를 결성, 초대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협회 이사로 있다.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 젊은이들 못지않은 열정으로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인 임씨는 “보험이란 예측할 수 없는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라며 보험인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아직도 보험에 대한 상식부족으로 제대로 보상을 받지 못하는 한인들이 많다”며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진혜 기자> jhkim@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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