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어느 날 늦은 밤중에 문을 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기에 놀라서 문을 열어보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이 엄마 하면서 뛰어 들어왔다.
겨울 끄트머리라 날씨가 쌀쌀함에도 집에서 입고 있던 얇은 옷 그대로 양말도 신지 않은 채 외출해 있던 남편에게 문자하나 날려 보내 놓고 벨트웨이를 운전하여 무작정 달려 온 것이었다.
6월 전문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한 단계 올라서기 위해 있었던 일생일대의 중요한 인터뷰, 그 발표 날이 다가오자 불안감과 초조함에 마음이 떨려 우리를 찾아온 것이었다. “오늘은 엄마 곁에서 자고 가고 싶어요.”
“걱정되니?” “네” “염려하지 말아라.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다.”꼭 끌어안아 주는 내 가슴에 머리를 푹 파묻는다.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미안함이 잔뜩 묻어있다.” 아들아 염려하지마. 엄마가 있잖아 내가 있는데 왜 걱정해” 아들 목소리가 확 펴지는 것이 느껴진다.
신문 사회면을 보면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반인륜적인 기사들을 자주 보게 된다. 요즘 엄마들은 얼마나 능력 있고 똑똑한지 자녀들의 앞길을 위해서라면 물질은 물론 ‘너를 위해서’라는 명목 하에 정으로 돌을 쪼아 다듬듯이 친구의 자녀처럼 만들려고 완벽한 말로 쪼아댄다.
칭찬을 듣고 싶고 자랑스러운 자녀가 되고 싶어도 모자란 부분만 지적하니 엄친 딸, 엄친아들이 되지 못한 자녀들은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해 버리고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는 인터넷 품, 게임기 품에 파묻혀 빠져나지 못한다. 예전 우리 어머니 세대는 알토란 같이 똑 떨어진 신세대 엄마처럼 지식은 적었어도 따뜻한 품이 있었다.
좀 모자라도, 누가 몹쓸 것이라고 흉을 보아도, 세상에 그 어느 것과 비교 할 수 없는 내 자식이었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풍부하고 귀하고 좋은 것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대도 왜 점점 더 자녀들의 정서는 메말라가나.
그것은 우리 자녀들이 언제고 와서 힘든 마음을 풀어 놓고 쉴 수 있는 엄마품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자녀들의 필요를 다 채워주는 능력 많은 부모보다도, 인정해주고 칭찬해주고 용기를 주는 말을 먹으며 자란 자녀는 척박하거나 메마르지 않고 기름진 생을 일구며 나가게 될 것이다.
자녀들이 잘못을 하고 실수를 했을 때도 “ 너는 왜 그러냐”고 다그치며 몰아세우기 전에 그 잘못을 꼭 품에 안아주자. 그리고 봄 햇살처럼 포근한 눈빛과 따스한 손으로 말없이 자녀들의 등을 두들겨주자.
거기에서 자녀들은 가장 중요한 인간애를 배우게 될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엄마 품에서 울게 하라 기뻐하게 하라. 그리고 쉬게 하라. 단 아무 것도 물어보자 말고 무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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