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가에 안 갔다면?
윌트 챔벌린이라는 불세출의 농구선수가 있었다. 별명이 ‘골리앗’이었다. 7피트 1인치의 키에 체중이 300파운드를 웃돈 그는 1962년 한 NBA 경기에서 혼자 100점을 올리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14년을 뛴 농구장 밖에서 더 초인적인 기록을 남겼다. 평생 총각으로 살았으면서도 2,000명이 넘는 여자와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다.
NBA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NBA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50인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며 은퇴 후 프로 배구선수로 전향해 국제배구협회(IVA) 회장을 지냈고 IVA 명예의 전당에도 올랐다. 책을 몇권 저술했고 영화 ‘파괴자 코난’(1984)에서 아놀드 슈와제네거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경기장에도, 촬영장에도 여자들이 줄지어 자기를 기다렸다고 떠벌렸다.
한국에도 챔벌린과는 비교가 안 되게 왜소한 체구지만 나름대로 초인적인 남자가 있었다. 챔벌린의 연수와 비슷한 기간에 200여명의 여성과 사흘에 한번 꼴로 잠자리를 같이 했다. 모두 젊은 미녀들이라고 했다. 고 박정희 대통령 얘기다. 그는 생애 마지막 밤에도 젊은 여자들을 데려와 술을 마시다가 심복 김재규에게 암살됐다. 바로 34년 전 오늘이다.
소위 ‘10․26’ 사건이 터진 곳은 청와대 옆의 ‘궁정동 안가(安家)’였다.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관리한 이 ‘안전한 집’은 박 대통령 전용의 비밀 휴식처였다. 공관인 청와대는 외부 출입자의 신원이 모두 기록으로 남는다. 더구나 영부인 육영수 여사를 비롯한 주위의 눈을 피하기가 어렵다. 정보부는 궁정동 외에 청와대 지척에 안가를 서너 개 더 관리했었다.
그날밤 술자리에는 차지철 경호실장과 그의 라이벌 김재규 정보부장 및 김계원 비서실장이 합석했고 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이 호출돼 왔다. 그 무렵 부산과 마산에서 터진 반 유신독재 민중시위(부마항쟁)는 가까스로 진압됐지만 불길이 박대통령의 텃밭인 대구로 옮겨 붙는 상황이었다. 박통은 정보부가 안이하게 대처한 탓이라며 김재규를 질타했다.
차지철이 거들었다. “캄보디아가 300만명을 죽였다는데 우린들 100~200만명 못 죽이겠냐”며 시위대를 탱크로 밀어붙여야한다고 주장했다. 곧 이어 20여발의 총성이 울렸다. 박통과 차지철은 김재규 총에, 경호원 4명은 정보부원들 총에 각각 사살됐다. 독재자라는 오명과 경제부흥의 견인차라는 칭송을 함께 듣는 박통의 18년 철권권좌가 그렇게 끝났다.
당시 중앙청 출입기자였던 나는 다음날 새벽 공보관의 전화를 받고 달려 나갔다. 김성진 문공장관이 기자실에서 박통의 서거를 공식발표한 후 대성통곡했다. 한국일보 선배기자 출신인 그는 박통을 개국 이래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신봉했었다. 그는 그 이유를 2006년 펴낸 자서전 ‘박정희를 말하다’에서 소상하게 설명했다. 김 전장관은 2009년 별세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만약 그날 밤 박통이 안가에 안 갔다면 어찌됐을까? 그는 죽지 않았고 경제발전도 계속됐을 터이다. 국민의 저항 때문에 유신독재가 오래 부지 못하고 민주화가 10년 빨라졌을 터이다. 자의든, 타의든 권좌에서 물러난 후 십중팔구 그의 후계자 전두환․노태우처럼 교도소에 갔을 터이고 ‘부녀 대통령’의 탄생도 어려웠을 터이다.
김재규는 1980년 사형언도를 받기 전 법정 진술에서 박 대통령 저격이 ‘혁명’이며 우발적 충동이 아니라 7년간 준비해온 ‘거사’였다고 주장했다. 서울의 한 극단은 작년 11월 ‘김재규는 왜 다카키 마사오를 쏘았나’라는 연극을 공연하며 김재규를 반독재 민주열사로 치켜세웠다. 다카키 마사오는 박통이 만주군 장교로 복무했던 당시 사용한 일본 이름이다.
공교롭게도 10월 26일은 안중근 의사가 104년전 만주 하얼빈 역에서 일본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날이기도 하다. 김재규의 박통 암살이 안 의사 수준의 ‘거사’였는지는 역사가 판단할 일이다. 궁금한 건 박통의 안가 주색잡기 몰입 이유다.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렇다면 그의 미혼장녀인 박근혜 대통령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 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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