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해튼 32가의 식당. “얘가 걔란 말이야?” 우연히 만난 선배 회계사가 내 딸의 훌쩍 큰 모습을 보고 놀랐다. 옛날에는 주말에 일 할 때, 어린 애들을 사무실에 데리고 나갔다. 애들은 옆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곤 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애들이 찾아갔던 곳이 복도 끝의 그 선배 회계사 사무실. 거기엔 맛있는 사탕과 과자 같은 것들이 많았다.
"세금보고는 나한테 갖고 와. 네 아빠보다는 내가 낫지" 그 선배 회계사가 살갑게 농담을 한다. 그가 자리를 뜨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딸이 묻는다. "아빠, IRS가 Federal이야, State야?" "...." 얼른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선배 회계사는 조금 떨어져서 앉고 있었다. 다행이다. 24년을 아빠 옆에서 지켜봤고, 또 때로는 사무실에 와서 도와줬던 녀석이 IRS가 Federal인지 State인지도 몰라서 묻다니. 아이고.... ㅠㅠ
내겐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 다른 사람에겐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어느 날, 우리 직원이 손님에게 설명을 하면서, 계속 '파이카, 파이카' 했다. 그 직원에게는 너무 쉽고 익숙한 말인지 모르지만, 손님은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원래, 이 FICA라는 말은 Federal Income Contributions Act라는 법률의 이름이다. 주급에서 공제하는 소셜 시큐리티 6.20%와 메디케어 1.45%를 합쳐서 회계 사무실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을 상대방도 당연히 알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 위험하고 무례한 일이 아닐까?
손님에게 결산 자료를 달라고 할 때도 그런 실수를 한다. "캔슬첵도 꼭 보내주세요." 캔슬첵은 canceled check, 즉 발행을 해서 정상적으로 결제가 된 수표를 말한다. 그런데 어떤 손님들은 쓰다가 실수한 voided check을 보내주기도 한다. 충분히 그렇게 잘못 알아들을 수 있다. 우리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어야 했다. 손님의 잘못이 아니라, 명백한 우리들의 잘못이다. 짜증을 낼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손님이여야 한다.
프랑스 식당의 주방에서만 쓰는 전문용어가 있을 것이다. 비행기 조종사들만 쓰는 전문용어도 있을 것이다. 그 식당의 손님이나 비행기 탑승객들이 모두 그 전문용어들을 알아들을 수 없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다. 전문가는 전문용어 쓰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풀어서 말하는 것 - 그것이 진짜 프로고, 진짜 배려다. 그리고 IRS는 Federal, 연방 국세청이다.
<
문주한 공인회계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