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년간 한국에 머물면서 짬이 날 때 마다 여행을 즐겼다. 그래서 ‘죽기전에 꼭 가봐야 할 36곳’을 포함해서 왠 만한 곳은 다 가본 것 같다. 국내여행은 섬들을 빼놓고는 거의 하루 길이기 때문에 밖에서 밤을 머무는 일이 드물었다. 밖에서 머물 때면 주로 비용이 적게 들고 가족이 함께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펜션을 찾았다.
미국에도 이런 숙박시설이 있으면 좋겠다하는 아쉬운 생각이 가끔 든다. 한국의 숙박시설가운데 패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60%가 넘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는 얘기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 1960년대에는 펜션이라는 숙박시설이 없었다. 나는 펜션이 한국에 언제 수입됐는지 알 길이 없지만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관광지에서 가족들이 여러 날을 함께 지내면서 음식도 해먹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숙박시설이 ‘원조’라고 한다. 이를테면 펜션은 비용이나 편리를 봐서 민박과 호텔의 중간쯤 되는데 우리 부부가 애용했다.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고 많이 애용되었던 여관 또는 여인숙은 왜 그런지 지금은 대부분 그 모습을 감추고 대신 민박이라는 숙박시설이 새로 등장했다. 옛날 여관에서는 아침식사를 제공했지만 민박에는 제공하는 곳과 그렇지 않는 곳으로 구분이 된다. 민박과 펜션의 가장 큰 차이는 시설과 비용이라고 볼수있다. 집 주인이 숙박객들을 직접 서비스하는 의미에서 한국의 민박과 미국의 ‘베드 엔드 브랙퍼스트’(Bed & Breakfast)는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옛날 60년대 호텔가운데 그 수준이 워커힐과 같은 상급호텔도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 간판만 호텔이지 시설면에서 여관수준을 겨우 벗어나는 것들이 즐비했다. 펜션이 유럽에서 수입된 것처럼 모텔은 미국서 수입된 숙박시설이다. 그런데 그 모텔의 용도가 미국과는 천양지 차이다.
미국의 모텔이 고속도록 주변이나 관광지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한국의 경우 많은 모텔들이 국도 옆이나 동네 가운데 몰려있다. 처음에는 동네사람들이 집을 놔두고 왜 모텔에 가서 자나 하는 의구심을 가졌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왜 이런 모텔을 ‘러브 모텔’ 또는 ‘러브 호텔’ 이라고 부르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촌동생과 지리산 여행을 할 때 국도 옆 모텔에서 하루 밤을 지냈다. 피곤했던 우리는 아침 9시까지 잠자리에 있었더니 관리인이 10시까지는 방을 비어달라는 주문이다. 이유를 무르니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라고 반문한다. ‘러브 모텔’은 낮 손님과 밤손님 하루에 두 차례 손님을 받는다는 얘기다. ‘이상한 연인들의 보금자리’가 ‘러브 모텔’에서 밤낮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는 속으로 모텔의 원조인 미국에는 왜 ‘러브 모텔’이 없을까?라고 의아했다.
서울서 서해안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변산반도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답변 국도 30번을 만나 한 40분쯤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면 격포라는 마을을 만난다. 수백명이 한꺼번에 머물 수 있는 대명리조트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리조트는 숙박만 하는 호텔과 가족이 함께 머물면서 음식을 할 수 있는 콘도로 되어있다. 콘도는 비용이나 시설 면에서 펜션보다 고급에 속한다. 격포에서 조금 더 내려가면 길목에 여기저기 패션 안내판들이 보인다. 안내판들을 따라 펜션마을로 들어가면 변산반도 해안과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런데 펜션 이름들이 재미있다. 즉 피아노 펜션, 모짜르트 펜션, 슈베르트 펜션 등 온통 음악과 관련된 이름들이다.
나는 혼자 있는 두 교수 친구와 이곳을 가끔 찾는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피아노 펜션이다. 객실에서 갈매기들과 함께 파도치는 바다와 해가 바다 속으로 풍덩 떨어지는 노을을 만끽 할 수 있고, 노도처럼 밀려오고 나가는 밀물 썰물에 산을 흔드는 파도소리, 이런 장관은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하나님의 신비다.
고교 교사로 은퇴한 50대 후반의 주인아줌마는 우리를 한 식구처럼 반겨주신다. 가끔 아줌마는 특유의 전라도식 반찬을 우리에게 보낸다. 나는 지금도 아줌마의 그 칼칼한 씀바귀 김치 맛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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